“역학조사지원시스템은 스마트시티가 단순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시스템과 데이터를 접목하고, 이해관계자가 서로 협력하는 방법에 관한 지름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대연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스마트시티 혁신성장동력 연구개발(R&D) 사업단장은 코로나19 역학조사지원시스템 개발을 이끌며 스마트시티의 방향성을 다시금 생각했다.
스마트시티를 흔히 첨단도시모델로 여기지만 기술 연계와 시스템 통합만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시스템만 해도 교량·터널 등 도시인프라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감지능력이 있어야 한다. 감지된 정보에 신경망이 작동해 행동 결정을 할 수 있는 두뇌도 필요하다.
스마트시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것이 데이터 허브인데, 인공지능(AI) 역량에 따라 데이터허브의 지능지수가 올라간다. 역학조사지원시스템에 쓰인 데이터 허브 모델이 이 초기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조 단장은 “데이터 허브를 통해 대구시에서 대규모 스마트시티 실증모델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시민에게 빠르게 이동경로를 제공하고 교통혼잡도 완화하며 빌딩 에너지관리시스템을 연결하면 도시 내 에너지 소비패턴도 파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학조사지원시스템은 데이터 기반 기술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향후 데이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세상은 데이터 중심으로 변하고 있지만 데이터를 의미있게 활용하고 추출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정책 의사결정에 활용되는지, 통계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AI로 분석하기 위해 패턴화되어 있는지, 데이터 연계는 원활한지, 데이터 형태는 표준화되었는지 등 프레임워크가 보다 세밀해져야 한다. 그는 “이 일련의 과정이 데이터 거버넌스인데 스마트시티에서의 데이터는 빅데이터보다 스마트데이터 즉, 잘 쓰일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단장은 스마트시티 R&D 사업을 하다 보니 데이터 설계와 관리 체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R&D라서 기술이나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막상 데이터 흐름관리에 대한 사전설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국가 스마트시티 데이터거버넌스 전담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 같은 상황에서 시민다수의 생명과 개개인의 인권을 놓고 고민해야 할 상황에 빠진다”며 “데이터의 범위, 체계 및 각 데이터셋의 생산자·소유자·사용자 등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이용에 대한 책임을 설정하는 제도적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연계와 상호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인센티브 부여와 규제완화를 포함한 다양한 정책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스마트시티 사업을 대규모로 진행함에도 글로벌 스마트시티 톱20에 우리기업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 사업도 대부분 단기 성과에 중점을 둔데다 민간 기업의 스마트시티 R&D도 부진하다. 디지털 트윈, 사물지능(AIoT), 클라우드-엣지컴퓨팅 기술, 도시정보학 등에 대한 정부 R&D가 저조하다.
EU는 EIP-SCC 또는 호라이즌2020 등 다양한 R&D 프로그램을 통해서 매년 8000억원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민간기업들의 기술이 뛰어나 연방정부는 주로 원천기술개발에 집중해온 편인데, 최근 바이든후보가 공약을 통해서 스마트시티를 위하여 2조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중국도 2013년부터 500조 이상의 스마트시티 투자를 천명했다.
조 단장은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매년 3000억원 이상 규모의 스마트시티 핵심 원천기술개발 사업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한국형 디지털 뉴딜 핵심프로젝트와 연계하고 필수 앵커시설인 데이터센터와 관련한 실증사업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시범도시 세종·부산 사업단이 실증할 대구·시흥을 대규모 글로벌 스마트시티 테스트베드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국가표준연구원(NIST)이 제안한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으로서의 도시모델을 속히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ICT기술을 도시인프라에 접목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ICT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상공간에서 인프라를 쉽게 컨트롤할 수 있도록 반응형인프라(responsive infra)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엣지 컴퓨팅, 5G, 슈퍼컴퓨팅 환경은 기본이고, 디지털트윈과 AR·VR·MR 등을 통해서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야 한다. 자율차나 도심항공교통(UAM)과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이 기존 도시시스템에 어울릴 수 있는 실시간 지능형 데이터플랫폼을 설계해 나갈 수 있다. 신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초기 계획단계에서 가상공간 모델링 기술을 적용하고, 3D프린팅과 로봇기술을 이용해 시공한 후 향후에 도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조 단장은 “이런 기술을 통해 별도의 자원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다양한 도시의 관리 모델과 서비스 모델을 용이하게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진정한 도시의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강조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
문보경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