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당시 모리 요시로 총리가 e재팬 전략을 발표한 이후 일본 정부는 매년 10조원, 20년 누계로 따지면 약 200조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을 전자정부 추진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전자정부 혜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2020년 유엔 전자정부 랭킹에서 한국은 2위를 차지했지만 일본은 14위에 머무르는 등 투자 대비 효과가 최악인 상황이다.
스가 요시히데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정보화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나자 디지털 정부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정보기술(IT)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정부 추진을 위한 사령탑으로 디지털청 설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0년부터 한국 전자정부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은 일본과 여러 면에서 환경이 다르다며 한국의 선진성을 애써 외면했지만 최근 일본 정부 및 집권 자민당 중의원·참의원 등으로부터 일본 정부의 디지털 정부 성공을 위해 한국 정부에 강의 요청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일본 정부가 한국 등을 벤치마킹해 디지털 정부 추진 사령탑으로 설립하고 있는 디지털청은 한국 정부가 전자정부 추진 초기에 만든 정보통신부, 정보화진흥원, 정부정보자원관리원, 지역정보개발원 등 기능을 망라한 조직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본의 경우 170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기간 행정 정보시스템을 각각 개발·운영하는 등 중복 투자로 인해 연간 4000억원의 막대한 세금 낭비를 초래, 한국처럼 지자체가 공동 이용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은 정부 조직 체계, 행정제도가 세계에서도 가장 유사한데 2000년 이후 불과 20년 사이에 무엇이 엄청난 격차로 벌어진 것일까. 한·일 간 국가정보화 수준 격차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크게는 전자정부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한 정치 지도자의 혜안과 리더십, 국가정보화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수행한 공무원들의 역량, 실제 시스템 개발을 담당한 기업의 기술력 등이 복합 작용해 오늘의 격차가 있게 했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청을 만들고 디지털 정부를 추진한다고 해도 이를 받쳐 줄 일본 내 기업 벤더의 개발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한 예로 일본 정부가 한국의 정부정보자원관리원이라는 조직을 벤치마킹해서 중앙정부 정보시스템을 한곳에 모은 상황을 가정한 집중 관리를 검토했지만 결국 일본 기업이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며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중앙정부 정보시스템을 맡긴다고 한다. 일본 기업의 업무용 소프트웨어(SW) 개발 능력은 한국과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국 기업은 일괄수주계약인 턴키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에 일본 기업은 턴키 방식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인력 투입에 비례해서 용역 대가를 받는 맨먼스(MM) 방식을 채택, 굳이 개발업체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도 하나의 원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디지털 정부 추진에 즈음해 현재 연간 10조원 정도 투입된 개발·운영비를 약 30% 삭감하기로 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MM 방식으로는 달성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개발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디지털 정부 추진 사업은 한국의 전자정부 추진 사례를 상당 부분 벤치마킹, 한국 정부의 행정·의료·교육 등 각 분야 정보화 추진 사례 및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일본 정부는 디지털 정부 정보시스템 혁신 방향을 제시하고 개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IT 기업의 전자정부 관련 혁신 노하우와 개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각종 솔루션에 대한 관심도가 이전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중소·벤처기업은 용기를 내어 일본 시장에 도전하기를 권한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이사 yomutaku@e-corporation.co.jp
-
김현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