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협력기술지주회사(대학 기술지주회사) 자회사가 1000개를 넘어선 것은 대학의 기술 사업화 측면에서 이정표로 여겨진다. 전체 대학 기술지주회사도 2008년 한양대 기술지주회사 1호 설립 이후 12년 만에 누적 75개를 기록했다. 자회사에서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투자금 회수율도 지난해 처음으로 100%를 넘겼다. 규모의 성장을 넘어 자회사 성공사례 확산을 위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학협력의 꽃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대학 산학협력단 또는 연구기관이 보유한 기술 사업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이 현물(기술)과 현금을 출자해 자회사를 창업한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기술기업 발굴과 외부투자 유치 등을 통해 자회사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 성격을 모두 지녔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제도 출범 당시부터 기존 산학연구나 산학협력단 주도 기술이전, 창업보육센터, 실험실창업, 학교기업 등이 가진 한계를 보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직접적 기술사업화 모델로도 주목받았다. 대학에 축적된 기술, 인프라,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양질의 기술 기반 창업을 촉진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교수, 연구원 주도로 이뤄지는 실험실 창업과 비교해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 실험실 창업은 일종의 개인 창업으로, 대학의 실질적 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기술지주회사를 통한 자회사 설립은 대학의 새로운 수익원 창출로 학교 재무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재정위기가 우려되는 대학 입장에선 기술지주회사는 창업, 사업화, 수익, 재투자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대안이다.
◇첨단기술 창업 '첨병'
초기에 대학 기술지주회사 설립은 주요 대학 산학협력단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2008년 한양대, 서울대, 삼육대 3개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시작으로 전국 대학으로 확산됐다. 2012년부터 본격적 창업 붐이 일어나면서 기술지주회사가 크게 늘어났다. 2016년부터 2018년 사이에는 매년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10개 이상 설립되고 자회사 역시 매년 40~60여개씩 설립되면서 급증했다. 지난해 말 자회사 수가 900개를 넘고, 올해는 전문대에서도 처음으로 기술지주회사 설립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김원용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장은 “2016년 산학협력법 개정을 통해 기술지주회사의 업무 범위와 투자조합 결성 및 운영이 추가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자회사 출자금만으로 창업기업의 성장 한계에 있었던 문제를 대학창업펀드로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기술지주회사 자회사 가운데 성공사례도 나왔다. 연세대 기술지주회사는 2011년 자회사로 편입한 라파스의 지분을 2014년 매각, 약 30억원에 달하는 투자회수에 성공했다. 라파스는 당시 연세대 생명공학과에서 개발한 마이크로 니들 기술인 '생분해성 마이크로구조체'를 이전 받아 사업화에 성공했다. 이후 지속적 연구개발과 특허 확보로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했다.
김훈배 연세대 기술지주회사 실장은 “라파스는 원천기술을 개발한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하고, 최고경영책임자(CEO)는 마케팅과 운영을 전담하며 조인트벤처처럼 일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대학은 연구소 역할을 하고 기업은 서로 각자 잘하는 일에 집중했던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부산대 기술지주회사는 2011년 신라젠과 공동으로 조인트벤처를 설립했고, 2017년 보유한 신라젠 지분 일부 매각을 통해 약 36억원을 회수했다. 가톨릭대 기술지주회사의 1호 자회사인 옥셀바이오메디칼은 2016년 보령제약으로부터 지분투자를 받았고, 이듬해 보령제약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질적 성장 위한 제도개선 필요
투자 회수 성공사례가 나왔음에도 1000여개에 이르는 자회사를 감안하면 성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 기술지주회사와 자회사 설립에만 초점이 맞춰져 사후관리나 성과창출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진단이다.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질적으로 성장하려면 제도 개선과 정부 차원의 사후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대표 애로사항으로 지적받았던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지분율을 20% 이상에서 10%로 낮추는 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다.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 의무지분율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5년 예외기간이 주어지지만 이 기간 내 증자에 실패하면 주식을 전량 매각해야 한다. 국내 기업이 설립부터 기업공개(IPO)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12년인 것을 감안하면 예외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예외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외부투자 등으로 자회사의 가치가 커질수록 기술지주회사는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증자해야 한다는 부담이 발생했다. 의무지분율에 못 미치면 산학협력단이 보유한 기술지주회사 주식 중 5% 초과분에 증여세가 부과되는 것도 부담 요인이었다. 올해 초 국회입법조사처는 기술지주회사 활성화를 위해 산학협력단에 대해 증여세 과세 완화를 검토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국장은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고 자회사를 육성해 성과가 돌아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면서 “정부지원사업이 아니라 대학이 보유한 역량을 결집해 가치를 올리는 모델이니만큼 이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에서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대학 기술지주회사와 자회사 중에서도 성과가 나오거나 특성화가 필요한 곳, 추가 지원이 필요한 곳 등을 나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의견이다. 기술지주회사 사후관리와 선별지원으로 성과를 관리하고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학 내 기술지주회사 인식 제고도 요구된다.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기술지주회사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김성근 부산대 기술지주회사 실장은 “사업화 성과를 낼만한 기술을 잘 골라서 6개월~1년씩 준비과정을 거쳐 중장기 재무전략까지 세우고 자회사를 설립한다”면서 “오랜 경험을 가진 실무자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할 때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대학으로부터 더욱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