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전기차를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었다. 전기차는 구매 과정에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연료비 등 내연기관차보다 유지비가 월등히 적게 든다. 부족했던 충전 인프라도 정부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확충되면서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다.
구매층 변화도 감지된다. 보조금 없이도 특정 전기차를 사겠다는 마니아층이 등장했다. 최근 국내에 공식 출시한 포르쉐 타이칸이 대표적이다. 기본 가격 1억4560만원에 옵션을 더하면 2억원을 상회하는 고가 전기 스포츠카지만, 계약 후 출고까지 대기 기간이 1년 가까이 걸릴 정도로 시장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포르쉐는 정부 정책 방향 등을 고려해 타이칸에 대한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기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내년 더 빠르고 멀리 가는 프리미엄 전기차들이 도로 위에 쏟아진다. 올해 역대 최다 판매 실적을 경신하며 대중화 가능성을 입증한 전기차 시장에 고성능·고효율 프리미엄 전기차들이 대거 투입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내년 대어급 전기차 12종 출시…더 빠르고 멀리 간다
전자신문이 내년 국내 출시를 준비 중인 신형 전기차를 집계한 결과 국산차 5종과 수입차 7종을 포함해 역대 최대 수준인 12종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올해 나온 최신 전기차를 포함하면 내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전기차는 30종에 달한다. 다양한 전기차 출시로 시장 업체 간 주도권 다툼도 한층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주요 신형 전기차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용 플랫폼 탑재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차 CV(프로젝트명), 제네시스 JW(프로젝트명) 등은 현대차그룹이 전기차에 최적화해 개발한 E-GMP를 적용했다.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플랫폼으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고 아래에 배터리를 장착, 실내 바닥을 평평하게 구현했다. 전용 플랫폼에 새로운 고속화 모터와 고효율 배터리 시스템도 갖췄다.
현재 최장 400㎞ 수준인 주행 가능 거리는 500㎞ 이상 늘어난다. 고전압 충전 기술로 충전 시간도 짧아진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브랜드로 출시할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는 20분 내 급속 충전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으로 500㎞ 이상 달릴 수 있다.
차량 형태도 크게 달라진다. 내년 등장할 신형 전기차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형태가 10종에 달한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차 CV, 제네시스 JW 등은 여러 차종의 장점을 결합한 CUV에 해당한다. 쌍용차 E100과 테슬라 모델Y, 쉐보레 볼트EUV, BMW iX3 등은 SUV다. 세단인 제네시스 eG80과 메르세데스-벤츠 EQS를 제외하면 모두 유틸리티 차량이다.
전기차가 유틸리티 차량으로 변신하면서 최근 유행하는 차박을 비롯해 레저용으로도 활용도가 더 넓어질 전망이다. 전기차는 배출가스가 전혀 없어 차박을 즐기는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 내년 등장할 전용 플랫폼 전기차는 실내 바닥이 평평하게 설계돼 비슷한 크기의 내연기관차보다 더 여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고성능·고효율·고가 프리미엄 전기차 통할까
기술력을 앞세워 고성능과 고효율을 추구한 전기차들의 가격 정책도 주목된다. 소비자 요구에 따라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하면서 주행 가능 거리나 길어진다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내년 출시될 전기차 가운데 7000만원대 이상으로 가격 책정이 예상되는 고가 전기차는 제네시스 eG80, 벤츠 EQS, 아우디 e-트론 스포트백 등이다. 내년 정부의 보조금 지급 기준이 최대 7000만원 수준으로 예상되는 만큼 업계는 이들 전기차는 보조금이 제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체별로 배출가스 총량 규제에 대응하고 보급 확대를 위해 자체 할인폭을 강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올해 벤츠는 EQC 2020년형을 공식 가격을 1000만원 가까이 낮췄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이 소진되자 지난달 1000만원의 추가 자체 할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우디도 딜러사별로 e-트론을 2000만원 이상 할인해 판매해 완판 기록을 세웠다.
고가 전기차 보조금이 제외된다면 제품 자체의 경쟁력만으로 시장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업계는 최근 출시된 타이칸 사례처럼 보조금과 무관하게 전기차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전기차 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나는 만큼 판매량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업체별로 자사 전기차만의 장점을 부각하면서 구매자에 차별화된 혜택을 제시하는 등 시장 선점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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