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사는 아들 내외가 집 뒤뜰에서 찍은 오렌지색 배경의 몽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수년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른번개도 불씨가 돼 거대한 산불들이 수개월 동안 지속됐다. 산불로 인한 재와 연기는 햇빛을 산란시켜 마치 지구 최후의 날을 연출했다.
학계에서는 지구온난화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때문에 시작됐다고 본다. 그에 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라는 국제기구가 발족된 것이 1988년이었으니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그리 오래되지 못했다. 유엔 주도로 10년 산고 끝에 1997년 12월 그 유명한 교토협정이 체결됐지만 참여국 간 갈등으로 사문화됐다. 그 후 또다시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 낸 것이 2015년 11월 체결된, 우리에게도 친숙한 파리협정이다.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하고, 1.5도로의 억제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지구온난화라는 현실에 놓인 위기감 때문에 과학자들은 목표 달성에 회의 어린 의견들을 계속 내놓았다. 급기야 2018년 10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제48차 IPCC 총회에서 금세기 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 배출 0', 즉 '탄소 중립'이 달성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세계 각국은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탄소 중립을 선언했으며, 최근에는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동참했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는 파리협정 이행 방안의 하나로 이달 말까지 유엔에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계획(LEDS)'를 제출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감축 수준을 정하기 위한 사회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탄소 중립을 선언하면서 그 목표가 대폭 상향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 중립은 우리나라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로 바꿔 놓을 것이다. 돈도 엄청나게 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인 인류의 의도된 외면으로 말미암아 초래한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다. 가용 수단은 아직도 많이 있다. 대표 재생에너지인 햇빛, 바람, 물은 태초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가솔린자동차보다 전기자동차가 먼저 나왔다는 것은 세상이 잘 모른다. 20세기 초반의 석유 산업 부상으로 도태됐을 따름이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필수인 직류 전송은 100여년 전 토머스 에디슨이 주창한 것이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서는 테슬러의 교류 전송보다 불리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교류로 결정된 것이다. 신기술이 보편화한 현재는 에디슨의 직류 송전을 다시 꺼내 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소는 어떠한가. 1930년대 하늘을 나는 여객선 힌덴부르크 비행선에 이미 사용된 바 있다. 불행하게도 1937년 5월 끔찍한 화재로 폭발하는 바람에 사라졌지만 안전 기술을 대폭 향상한다면 다시 꺼내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우리 사고의 '경로 의존성'이 문제다. 익숙함으로부터 일탈에 대한 두려움이 방해물이다. 혁신 없이는 기후 재앙이 더욱 심화할 것이고, 그러면 인류에겐 미래가 없다.
더 이상 오렌지색 하늘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탄소 중립 세상은 푸른 하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산업의 성장 동력도 열어 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일탈을 준비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워하지 말자.
손정락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에너지산업 MD jlsohn@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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