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돈이 신용 있는 사람을 찾고, 좋은 기업을 찾아낼 것이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 기술이 있기에 충분하다. 빅데이터가 담보를 대체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신용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다. 데이터가 진정한 신용이 돼야만 한다.”
지난 10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 서밋에서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한 연설의 일부다. 이 연설로 인해 앤트파이낸셜 상장(IPO)은 무산됐지만 마윈의 연설은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혁신과 금융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는 명연설이었다.
마윈 연설을 한국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그대로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들어 코스피 시가총액 변화는 산업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지난 10월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에서 네이버가 3위, 카카오가 9위를 각각 기록했다.
카카오는 올해 설립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2014년 유통업에 본격 뛰어든 쿠팡의 현재 기업 가치는 약 15조원으로, 이마트·롯데·현대백화점을 합친 것보다 높다.
기업 가치뿐만이 아니다. 일자리 측면에서도 쿠팡의 올해 10월 고용 인원은 3만6000여명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스타트업과 벤처가 만들어 낸 일자리는 86만개로, 대기업 1대 그룹에서 6대 그룹을 합친 것보다 많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올해 100만개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이버·카카오·쿠팡처럼 정보기술(IT)이 적용된 서비스와 제품이 국민 서비스가 되고 있고, 경제와 산업을 넘어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질서 재편이 가져오는 의미를 기존 금융 산업은 애써 외면하거나 당혹감을 보일 뿐 아직도 구질서에 사로잡혀 있다. 기존 금융 자본이 혁신산업에 흐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본질은 명확하다. 자본이 필요한 곳에 돈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금융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업 성장 결과물로 부동산, 공장, 운송자산 등이 생성됐다. 금융은 이 자산을 기반으로 자본을 공급하기 위해 등기 같은 등록 제도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기존 자산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자본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기존 금융 질서였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시대 성장을 주도하는 혁신 산업인 플랫폼 기업, 온라인 기업은 성장 결과물로 공장·부동산·운송 자산이 생성되지 않는다.
애플,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기업은 기존 자산이나 인프라 위에서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다 보니 부동산 등 영업 자산이 생성되지 않는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기업이나 우리나라 카카오·네이버 등도 회사 자산이 온라인에 존재하다 보니 이들 자산은 과거와 같이 등기 등록이 가능한 자산들로 축적되지 않는다.
그 대신 혁신기업의 자산은 데이터와 현금 흐름이다.
기존 금융 산업은 혁신기업 성장의 열매인 빅데이터와 현금 흐름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마윈의 연설처럼 빅데이터와 현금 흐름을 측정하고 자산화해서 담보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다. 아직도 자본이 흐르도록 하는 기준은 디지털 전환 시대 이전의 획일화되고 동일한 잣대를 고집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본이 필요한 곳은 변했는데도 기존 금융 산업은 자본이 필요한 혁신산업을 외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본 불균형은 커지고 있고, 심지어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마저도 늦춰지고 있다.
더 이상 금융이 혁신 걸림돌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제 한국 금융 산업은 본질을 회복해야만 한다. 자본이 필요한 곳에 자본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고, 성장하는 혁신산업에 자본을 어떻게 공급할지에 대해 금융권은 고민해야 한다. 금융은 혁신의 파트너야만 하고, 성장 견인차로 거듭나야 한다.
마윈의 의미심장한 연설로 한국 금융권이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금융은 미래를 향해야만 한다.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미래는 반드시 온다. 우리가 주도해서 먼저 하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 먼저 할 것이다.
김항기 고위드 대표 until99@gowi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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