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급변하는 시대, 출연연은 과학기술 미래를 이끌 수 있는가?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

2020년은 우리가 겪어 온 21세기 중 가장 극심한 변화가 일어난 해로 기억될 듯하다. 코로나19 등장과 언택트 문화 확산, 전 세계 경기불황, 소비습관 변화 등. 그래도 우리에게 고무적인 것 중 하나는 한국 과학기술의 높아진 위상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그로 인해 변화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던 유럽, 미국과 달리 한국은 변화된 생활에 잘 순응했고, 위기를 무난히 극복해 나아가고 있다.

이는 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과 더불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보다 진보한 디지털 기술과 진단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단키트를 활용한 성공적인 방역체계를 가동시켰고, 각종 디지털 페이, 애플리케이션(앱),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 피지털(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 연계 전략) 등을 기반으로 삶의 변화를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국가방역체계는 고사하고 마스크 착용조차 거부하며 과학기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유럽과 미국을 보면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해와 신뢰가 얼마나 높은지 느낄 수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높은 수준의 이해와 저변을 바탕으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단편적이고 근시안적 과학기술 정책으로 우리나라는 과학 강국 진입문턱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단기적 연구성과 요구로 인해 장기적이고 창의적 연구는 사라지고, 정치논리에 따른 소극적 연구만 이뤄지는 탓이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문제가 심각하다.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기업과 대학이 수행하기 어려운 중장기 기반 연구를 전담하는 곳이 출연연이다. 국가 차원의 공공 연구개발(R&D)을 주된 임무로 하며 세계 연구자들과 경쟁을 펼치는 출연연은 과학기술계 유일한 국책연구기관으로 대학이나 기업과 경쟁하는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산·학·연 협력을 통해 현재 출연연이 겪고 있는 인력과 인프라 공급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 R&D 분야 특수성을 바탕으로 설립된 만큼 출연연은 독립성과 자율성이 인정돼야만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행정 편의, 관료 중심주의에 의해 재단되고 휘둘리면서 출연연은 고유 임무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정책 '키워드'가 바뀌고 이에 따라 연구주제와 R&D 예산이 오락가락하는 문제가 반복되면서 출연연 생산성과 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미래에 대비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과학기술 연구가 올바른 이해와 철학이 부재한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서, 연구의 자율성이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해 제대로 된 연구성과를 내놓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나 출연연이 세계적 수준 과학기술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연구현장 의견을 반영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과 연구과제중심제도 등 개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또한 단편적 정량성과의 상대 비교가 아니라 연구 수월성에 기반한 질적 평가 도입, 그리고 중장기적 관점 연구지원 및 인재양성을 통해 연구자들이 경직되고 소극적인 연구활동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끝으로 이런 논의가 지난 20여년간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다양한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들이 반복 제기된다는 것은 시대 흐름에 따른 출연연 역할과 임무에 대한 철학이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출연연 역할과 임무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며 이를 토대로 정책 수립과 실행 원칙의 설정이 필요하다.

그나마 한국과학기술이 지금의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의 높은 지식 수준 덕분이다. 오죽하면 영화 '인터스텔라'을 보고 이해하며 과학적 허점을 찾는 관객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과학기술에 대해 높은 눈높이를 갖고 있는 국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이 출연연과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 shnahm@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