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만큼 사대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혐오감을 강하게 표현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 외세에 시달린 역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아직도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거부감이라는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 정부는 전자정부 프레임워크 제정 등을 통해 더 쉬운 개방형 정보기술(IT) 환경을 만들겠다고 앞장서 왔다. 전자정부 프레임워크의 기반은 오픈소스다. 최근 IT업계에서 절대 선으로 여겨지는 개방성과 저비용의 상징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오픈소스 프로젝트 수는 단 10개로 집계되고 있다. 또 개발자 구루(권위자, 전문가집단)라 할 수 있는 숫자도 780명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세계에는 800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4만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개방형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오픈소스 생태계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외국에서 만들어진 오픈소스를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국내 SW 역량을 강화해 국내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활성화하는 것이 맞을까.
두 번째 장면. 지난 2019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국산 SW업계 참석자가 토해낸 울분이다. 그는 글로벌 SW 기업에는 유지보수 요율을 20% 이상 지출해도 문제가 없는데 국산 SW는 조금만 올려도 감사 대상이 된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예산 당국은 물론 감사원까지도 국산 SW의 유지보수 요율이 올라가면 마치 큰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산은 외산보다 못하다는 사대주의 선입견이 만연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비단 유지보수 요율에만 한정된 것일까. 제품 선정 및 구축 과정에서는 어떠한가. 국산 SW로 프로젝트가 수행된다면 누군가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까.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목받는 공공정보화 사업에 국산 SW가 기여할 제도 장치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 있는 국산 SW 도입이 대형 공공정보화 사업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와 담당 부처의 복지부동으로 이를 외면한다면 단기로는 국민 혈세 낭비와 국부 유출이고 장기로는 제조업보다 유발 계수가 4배라는 SW 산업의 몰락을 불러올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며 기립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오바마는 감동 어린 연설을 하지도 않았고 대단한 정책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단지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의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라고 외쳤을 뿐이다.
코로나19 여파를 겪으며 민간부터 공공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노력이 과연 결실을 맺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국산 SW 생태계의 육성과 사용의 제도화를 외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맞는 이야기'이거나 '좋은 이야기'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세계 최고라는 미국마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과연 우리는 국산 SW와 그 생태계를 낡은 패러다임이라 생각하고, 글로벌화와 개방이라는 포장으로 복지부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산 SW 사용은 더 이상 낡은 패러다임이 아니다. 정책·제도 차원에서의 국산 SW 지원은 디지털 사대주의 극복의 초석이자 국내 SW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뛰어넘을 기회의 사다리가 될 것이다. 국산 SW의 자강을 이뤄 국가 기술력을 함양했을 때 한국은 비로소 디지털 경제 시대의 진정한 개방과 혁신을 할 수 있다.
이현욱 티맥스클라우드 대표 hyunwook_lee@tmax.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