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2020년도 며칠 안 남았다. 한 해의 끝 무렵이지만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아이들의 '징글벨' 소리가 사라졌고, 어른들의 '건배사'도 들리지 않는다. 식당은 고요하고, 거리는 한산하다. 이맘때면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조차 어색하다. 오직 키워드는 하나다. 코로나19다. 세상을 완전히 덮었다.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났다. 그만큼 숨죽인 2020년이었다.
그래도 연말이다. 주변을 돌아볼 때다. 쓸쓸하고 우울할수록 온기가 필요한 곳은 더 많아지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눈길이 간 뉴스가 대구 '키다리 아저씨'였다. 올해가 마지막 기부라는 것이다. 지난 2012년에 시작한 선행을 마무리했다. 사업체에서 나오는 수익 가운데 3분의 1을 이웃과 나누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10년 내내 실행에 옮겼다. 지금까지 기부한 액수가 10억3500만원이다. 기부금과 함께 전한 메모는 짧지만 울림은 컸다. 얼굴 없는 천사는 1억2300만원을 흔쾌히 기부하면서 “함께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많은 분이 (키다리로)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면서 “나누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배우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백 마디 말보다 실천 한 번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 줬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꿔 놓았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세상을 나눌 정도다. 불행하게도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이전에 비해 녹록지 않다. 더 삭막해지고 팍팍해졌다. 당장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우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생존을 위한 한계에 몰려 있다. 성장은 멈췄고, 소비심리는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 숨통을 텄지만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일상의 위협도 '발등의 불'이지만 정작 공동체가 고민할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격차인 '코로나 디바이드'다. 계층·세대·빈부에 따른 양극화와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졌다. 소득 상위층과 하위층의 피해 격차가 커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코로나 디바이드는 결국 '디지털 디바이드'다. 코로나19 시대 일상용어는 '비대면, 언택트'다. 비대면은 따져 보면 온라인의 다른 표현이다. 온라인은 디지털 세상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디지털 시대는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성큼 와 있었다. 정보와 기술 격차도 마찬가지다. 정보 불평등은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면이었다. 디지털이 보편화하면서 이를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 불균형은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사회 격차를 더 부채질하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소득·교육·지역·연령 등을 가리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사회를 양극화하는 추세다. 당장 실버세대는 디지털 문명에서 소외되고 디지털 약자로 전락했다. 인터넷조차 배울 기회가 부족한 저소득층 가정은 교육을 포함한 보편서비스에서 소외층으로 밀려나고 있다 .디지털로 무장한 기업과 계층은 더 많은 수익과 소득을 가져가겠지만 그렇지 못한 계층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디지털로 인한 양극화가 코로나19로 더욱 극심해진 것이다. '디지털 권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디지털 시대에 소외층은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에서 배제된 디지털 약자다. 대책도 달라야 한다. 당장 주머니가 가볍다고 돈을 쑤셔넣어 주는 건 과거 방식이다. 잠시 고통을 덜겠지만 멀리 보면 디지털 디바이드를 더욱 고착화할 뿐이다. 디지털 포용 정책은 먼 데 있지 않다. '디지털 약자'만큼은 묵묵히,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