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는 영세한 소상공인,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등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일정 규모의 제품 양산 자금을 초기부터 부담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특히 중소 제조업체가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할 위험성도 더욱 높아진다. 즉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 제품을 제조, 판매하기 위해 최소 주문 수량을 충족시켜야 하는 부분은 사업자가 감내해야 하는 금전 부담이나 리스크로 남는다.
홈쇼핑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존 유통시장은 어느 정도 재고가 확보된 사업자만 진입이 가능하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소규모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서 선보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안은 없을까.
제조업의 생산 방식이나 재고 관리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제조사·소비자직거래(D2C)나 소비자·브랜드직거래(C2B) 등 고객 관계 중심, 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유통시장이 열리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판매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보텀업 방식의 생산 구조를 구축해 사용자 관여에 주목하고, 소비자 참여를 통한 고객 경험에 맞춰 상품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축이 옮겨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유통 혁신의 거대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유통시장의 틀이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대안 유통 채널의 하나로 크라우드펀딩 역시 주목받고 있다. 고객 관계를 아직 구축하지 못해 D2C 유통 채널을 직접 체계화하지 못한 초기 기업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2018년 1300억원, 2019년 3300억원 등 꾸준히 성장한 가운데 올해 약 5000억원 규모로 전망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이 먼저 태동한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세는 더욱 고무시킨다. 독일의 글로벌 리서치 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2019년 14조원에서 오는 2023년 24조원 규모로 연평균 17% 성장세가 전망된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커지면서 동시에 소비자 보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펀딩 참여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리워드로 받는다는 측면에서 단순 쇼핑이나 커머스와 유사하게 인지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은 자금을 조달한 만큼 생산한 후 배송하는 구조를 취하기 때문에 기존 전자상거래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초기 기업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의 취지와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산업 활성화 측면에서 자금 공급자인 소비자와 자금 수요자인 기업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제도나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기존에 없던 시장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하기까지는 반드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토론회가 두 차례 진행됐다. 정부와 학계·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크라우드펀딩의 특성과 취지에 맞는 제도 마련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를 가졌다. 제도 환경의 안정 조성을 위한 첫발을 뗀 것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좀 더 자세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하며, 앞으로 중소기업의 유통 혁신 채널로서 크라우드펀딩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을 펼치는 이들에게 좋은 제도로 자리 잡길 바란다.
장정은 와디즈 법무총괄이사/변호사 jechang@wad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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