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국서만 AC로 불리는 액셀러레이터

[ET단상]한국서만 AC로 불리는 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이하 액셀러레이터)라는 창업생태계 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시작된 지 미국은 약 15년이 지났다. 한국은 약 10년이다. 액셀러레이터 역할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액셀러레이터 정체성과 역할은 여전히 불명확하고 혼란스럽다. 생태계 내 구성원들의 우려도 크다.

한국 법에서는 액셀러레이터를 창업기획자로 규정하고 '초기창업자 등의 선발 및 투자, 전문보육을 주된 업무로 하는 상법상 회사 및 민법에 따른 비영리법인'을 칭한다. 실상은 다르다. 정부 투자 재원이나 프로그램 운영비를 수주하기 위한 입찰 자격이 있는 기관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액셀러레이터는 법률상의 지위가 없다. 참여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연구자의 액셀러레이터 산업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고정된 기간 동안 기수로 구성된 다수의 스타트업에 대해 멘토링 및 교육을 포함하며, 데모데이라는 일종의 졸업 이벤트로 마무리되는 활동을 수행하는 프로그램(또는 조직)'을 의미한다.

오히려 이 같은 정의가 스타트업 창업가와 근무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액셀러레이터 모습과 유사하다. 최근 등록 액셀러레이터 300개 시대가 열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국내 300여개 등록 액셀러레이터 가운데 해외 언론이나 관계자에게 액셀러레이터라고 소개할 수 있는 곳은 많아야 10개가 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액셀러레이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엑셀러레이터의 정확한 표현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속기)'라고 할 수 있다. 가속 대상은 '스타트업이라는 불확실한 사업 모델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검증'이다.

대부분이 '성장'을 가속화한다고 이해하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왜곡된 표현이다. 미국 정부의 연구를 보면 액셀러레이터의 주요 역할과 성과에 '비유망 스타트업의 빠른 해체'에도 적지 않게 무게를 싣고 있다. 액셀러레이터의 진정한 성과 측정에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거론한다. 반면에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특히 취약한 한국에서는 성장의 가속화만을 성공한 성과로써 액셀러레이터를 다룬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사라져야 할 스타트업은 늦기 전에 빨리 도태시키고 새롭게 다시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액셀러레이터에 기대하는 요건 가운데 스타트업의 조기 폐업은 없을 공산이 크다.

액셀러레이터를 다룰 때 함께 고민할 문제는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털, 창업보육센터 등 유사한 주체와 함께 액셀러레이터가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가이다. 생태계 내 다수가 액셀러레이터 차별점으로 멘토링, 네트워킹 등을 얘기한다. '고정된 기간, 기수 방식으로 구성한다'는 두 가지 특성을 빼면 대부분의 활동은 벤처캐피털 또는 엔젤투자자와 중복된다.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의 대표인 와이컴비네이터도 자신을 '다수의 스타트업 집단인 동시에 초기투자 모델의 창시'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액셀러레이터의 차별화된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AC'(액셀러레이터)라는 생소한 약자다. VC(벤처캐피털)에서 파생된 듯한 정체불명의 약자 AC가 액셀러레이터를 뜻하는 의미로 언론, 정부 문서 및 해외 대상 포스터에도 쓰인다.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다. 세계에서 사용되지 않는 갈라파고스식 용어다. 활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차라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SA)라면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액셀러레이터도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다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만 다른 길을 갈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누구를 만나도 같은 용어와 의미로 통용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액셀러레이터에 대한 통계와 연구에도 국제사회의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그 결과 혁신 생태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종훈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jonghoon.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