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 본 경험이 있다. 주말에는 복합쇼핑몰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처럼 유통업은 실생활과 밀접하다. 시장경제에서 모든 국민은 소비 활동의 주체이자 소비자가 된다. 그리고 소비자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장소와 거래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정작 유통 산업을 둘러싼 정책 논의에서 소비자는 빠져 있다. 유통 규제 입법 추진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유통업체,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다각도로 다뤄지지만 소비자 편익은 철저히 배제된다.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 상생을 오직 규제에서 찾는 정책 앞에 소비자 주권은 딴 세상 얘기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비자 권리를 지켜 달라'는 청원이 게재됐다. 청원인은 “대기업과 소상공인이라는 양측의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고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본 청원을 작성했다”면서 “이 경쟁에서 소비자 입장은 늘 소외된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청원인은 “더 강한 규제가 상생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여권은 복합쇼핑몰 주말 의무휴업을 강제하는 개정안 처리를 벼르고 있다. 미세먼지와 더위, 한파를 피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정치권은 규제가 골목상권을 살려냈다고 실증하는 논거는 제시하지 못한 채 “상인들의 절규를 들었다”며 유통 규제를 다수 여론으로 포장한다.
유통 산업을 규제하려면 소비자 후생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옳다. 핵심 당사자를 배제한 입법은 공정성과 정당성을 갖추기 어렵다. 지난달 20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백화점과 중소상공인 간 상생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정연승 차기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비자후생지수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통 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 속에 소비자 가치를 부각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하다. 이제 유통 생태계 관점에서 소비자후생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규제 입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기업 경영만큼 중요한 것이 소비자 편익이다.
이날 발표회에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 국회의원이 모두 참석했지만 정작 중요한 제언은 듣지 않았다. 의원들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 노력만 치하한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입법권자에게 소비자 주권은 여전히 뒷전이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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