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이 LG 측 승소로 끝나면서 양사 합의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양사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데다 감정의 골도 깊어 풀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2의 반도체'로 꼽히며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한 배터리 산업계 안팎에서는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양사가 대승적인 협의와 협력에 나서길 기대했다.
ITC는 지난 10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에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 영업비밀을 탈취했다고 밝히며 SK 전기차 배터리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도록 명령했다.
이번 ITC 판정에 양사의 이해득실은 엇갈렸다. 수입금지 대상이 될 SK 전기차 배터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탑재가 예정된 제품이어서 SK이노베이션 매출에 영향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폭스바겐 전기 승용차에 SK 배터리는 내년 시판될 예정이며, 포드 전기 트럭에 2023년 시판이 예정돼있다.
그러나 ITC 판정에 따라 SK이노베이션 공급 계약분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전기차 프로젝트가 통상 4~6년이란 점을 감안하면 SK 배터리는 폭스바겐에 양산 후 1년, 포드에 양산 후 2.5년 생산 가능하다. ITC는 폭스바겐 'ID.4' 배터리 관련 제품은 2년, 포드 'F-150' 배터리 관련 제품은 4년 수입을 허용하는 유예조치를 내렸다. 업계 안팎에서는 SK가 양사에 배터리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데다, 추가 사업 기회를 따지면 천문학적 사업 손실을 봐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판결로 배터리 소송 합의에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ITC가 LG 측 영업비밀을 인정한데다, 공공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배터리 공급분 확보를 위한 유예기간까지 줬기 때문이다. 또 SK이노베이션이 양사에 공급 중인 배터리 물량을 LG에너지솔루션이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고 업계는 분석했다. 회사는 SK이노베이션과 동일 방식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제작해 공급한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들은 서둘러 합의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을 대체할 제품 공급처를 찾기 위해서는 최소 수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양사 합의는 궁극적으로 미국 완성차 업체와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면서 합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사태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합의에 나서는 게 양사 모두에 최선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LG에너지솔루션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에 합당한 합의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데 아쉬움을 표명하며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ITC는 이번 소송에서 자국 이익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최종 판결을 내렸다”며 “양사는 소송의 승패를 떠나 더이상 다툼을 벌이지 말아야 하며 배터리 산업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양사는 앞으로 서로가 유리한 고지에 다가서려 싸울 것이 아니라, 산업적 이해관계 모두가 충족되도록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