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답변이 상상된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지점은 정치가 국민 생활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점이다. 국민 역시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대표적이다. 정치인들의 의사결정과 정치 행위가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험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궤를 함께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정당과 후보에 표가 몰릴 개연성이 높아졌다.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들이 사명 의식으로 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행태는 여전하다. 정치가 점점 실종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타협과 협상은 뒷전으로 밀렸다. 정치의 비정치화는 심화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정치의 사법화다. 또 다른 것은 정치의 입법 과잉이다.
일단 특정 사안에 대한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면 여의도에서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서초동으로 달려간다.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 법원 의존도가 과거보다 높아진 느낌이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공화 체제에서 일견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는 여의도에서 해결하려는 의지의 부재가 아쉽다. 정치인 본인의 정치생명과 명운을 최우선적으로 사법부에 맡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의 기본은 대화, 타협, 협상이다.
또 다른 아쉬움은 정치인들이 기업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나게 돈을 벌고 기분 좋게 사회에 공헌하는 장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하려는 시도다.
얼마 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기부 발표가 화제였다. 전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최소 5조원의 담대한 기부다. 18일에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주의 기부 소식이 전해졌다. 김 창업주는 최소 5000억원을 기부하게 된다.
이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자발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재벌과 대기업의 이익 환원 약속과 실천은 있어 왔다. 문제는 대가성 논란에 휩싸이거나 권력에 대한 눈치 때문에 다소 비자발적(?) 기부를 함으로써 사달이 났다.
정치인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의 역할은 기업인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윤을 나누거나 기부하는 환경을 마련하고,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이 같은 시도와 노력조차 없이 모든 것을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은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여의도에는 법치만이 난무하고 있다. 입법과잉주의의 흔적은 이익공유제에서도 엿보인다. 국회와 정치권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이익을 공유하거나 기부하는 환경과 분위기 조성이 바람직하다. 시장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경제주의 체제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를 힘의 논리로 가져가는 것에는 저항이 있는 게 당연하다.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우려스럽다. 기업들의 경영 자율성은 보장하지 않고 법으로 밀어붙인다. 주52시간제가 대표적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은 어떤가. 퇴근 후 아르바이트가 늘었다. 검은 커튼을 치고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입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다. 국민의 정서와 상식에 기초하지 않고 무리하게 법을 만드는 것은 프로답지 않다. 정치권의 입법 활동은 어쩌면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 정치는 정치다.
김원석 정치정책부 부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