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운송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사건으로 인해 산업안전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한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이 그해 말 국회를 통과, 지난해 1월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개정법률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도급인 산재 예방 조치 의무 확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등 내용을 담고 있어 종전에 비해 노동자 산업안전을 위한 제도상의 규제를 강화했다.
이와 별도로 인명 피해가 일어난 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도 커다란 사회 논란 속에서 올해 1월 8일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다.
산업안전을 위해 제·개정되는 법률 규정들만 보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 안전은 괄목 대상으로 향상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빈번한 건설업계에서 일한 경험으로 볼 때 처벌 강화 위주의 법률 중심 시책만으로는 2%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안전사고가 났다 하면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공동주택 관리 분야에서 정부가 규정 하나만 고쳐도 수많은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상당수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 당시 국회 신창현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주관한 건설 산업의 추락재해 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와 병행해서 손쉽게 개선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 및 규제 강화를 촉구한 바 있다.
대표 분야가 국토교통부 관장의 '아파트 재도장 사업장 적격심사표준평가 시스템'이다. 현재 공동주택 재도장 시장은 가격 경쟁이 심해 안전관리 능력이 부족한 영세기업들의 저가 수주와 인명사고 빈발이라는 구조가 고착돼 있는 분야다. 실제로 2019년 한 해에만 전국 아파트 재도장 작업 도중에 추락재해 발생이 20여건에 이르고, 숨진 노동자가 확인된 것만도 13명이나 된다.
현재 공동주택 대상 사업자 선정 기준은 국토부가 시달하고 있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 지침에 명시돼 있다. 선정 지침에는 '공동주택 적격심사제 표준평가표'를 규정하고 있다. 선정 기준에는 기업신뢰도 30점, 업무수행능력 30점, 사업제안 10점, 입찰가격 30점을 각각 배점하고 있어 안전이나 환경보호 기준은 평가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 상태다.
상황이 이러니 영세 사업자들이 저가로 수주하는 데만 신경 쓰고 안전 대책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아파트 재도장 사업장에서 추락사라는 재해가 빈발하는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아파트 재도장 작업 분야에서 추락사 재해 발생과 인명 사고 발생을 대폭 줄이기 위해서는 아파트 관리 주체뿐만 아니라 재도장 업체들이 안전과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낙찰 방식은 적격심사제, 최저낙찰제, 최고낙찰제 등 세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저낙찰제는 노동자의 안전과 근로환경을 무시한 저가 경쟁을 만연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자 선정 시 최저낙찰제를 지양하는 대신 가격 점수와 안전 및 근로환경 대책을 골고루 평가할 수 있는 적격심사제 적용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 선정 기준에서 입찰가격과 기업신뢰도 비중을 낮추는 대신 안전 및 근로환경 대책 조항을 신설하고, 배점을 약 30점 책정해야 한다.
새롭게 국토부 수장으로 취임한 변창흠 장관은 주택 공급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한 전문가이니 추락 재해의 빈발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국토부 시각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부회장 hansongp@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