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축구공을 처음 만져 본 사람이 오늘 축구 선수 손홍민처럼 드리블과 슛을 한다면 어떨까. 오늘 골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내일 전 골프 선수 박세리처럼 샷을 날린다면 어떨까. 인간의 지능 발전이 이 수준에 이른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세계 4대 문명이 기원전(BC) 3000년에 시작됐다면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간이 나온 이후 불과 200만년 정도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지능의 발전은 인간을 생태계 사슬의 제일 꼭대기에 올려놓았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경쟁자는 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부터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나를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는 AI를 어떻게 처우해야 할까. 빅데이터 학습을 통해 정신 활동을 모방하는 AI에 사람이나 기업처럼 법인격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되고 있다.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대부분이지만 AI에 법인격을 부여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난날 노예는 사람이면서도 사람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법률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람이 아닌 것에 법인격을 인정한 사례는 영국 해상법이 선박에 법인격을 인정하고, 뉴질랜드에서 특정한 강을 법인으로 인정한 경우다.
2017년 2월 16일 의결된 유럽연합(EU) 결의안은 전자 인격에 관해 '향후 법률 장치에 대한 영향평가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법에 따라 모든 가능한 해결 방안을 분석하고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AI 로봇 작동에 따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등 문제에 집중하고 있을 뿐 법인격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대체로 법인격을 인정하는 것은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자연인과 공동체 이익을 위해 법령으로 인정한 법인이다. 법인의 기원으로 회사를 보자. 중세 시대 좁은 지중해를 둘러싼 동서 교역로를 이용해 무역을 독점하는 부류는 귀족이나 신흥 상공업 계층이었다. 그러나 대서양을 통한 교역로가 발전하면서 해외 무역은 태풍 같은 자연재해나 군사 충돌 위험성이 높아져 매우 위험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왕, 귀족 가문이나 상공업 계층에게는 막대한 금전이 필요한 일이었다.
여기서 사람처럼 법률 행위를 할 수 있는 기업을 인정하게 된다. 많은 주주가 출연한 자금을 모아 선박과 인력 등 투자를 하고, 해외 무역을 통해 발생한 이익은 주주에게 배당하며, 주주는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출연한 자금만을 잃게 했다. 즉 회사는 인력과 자금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공동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주주총회·이사회 등 의사결정 기관과 조직, 자본금 요건 등을 갖춰 등기하는 조건으로 사람처럼 회사 명의로 법률 행위를 하고 책임을 지도록 법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AI에 법인격을 주려면 검토할 것이 있다. 첫째 AI에 법인격을 부여할 공익의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AI는 개발과 활용에 대규모 자금과 인력이 들어갈 수 있고, 성과에 따라 산업과 시장에 많은 수익과 혜택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AI는 대부분이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될 것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이 법인격을 가지고 각종 투자, 수익 배분, 사회 기여 등 필요한 행위를 하면 될 뿐 그러한 행위를 AI 스스로 하도록 허용할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AI에 법인격을 직접 부여할 공익의 필요성은 낮다.
둘째 AI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관해 AI에 직접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어야 한다. 물론 AI 오작동이나 의도된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신체나 안전에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AI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물으면 될 뿐 AI 법인격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풀 사안은 아니다. AI에 법인격을 허용하면 AI 기업의 책임 회피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AI 법인격 논의는 다소 공허해 보인다.
외국 AI 드라마 '웨스트월드'나 '휴먼스'처럼 AI가 사람의 정신 활동 모방을 넘어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면 법에 따라 사람 대우를 해야 할지의 문제는 있다. 현재 감정이 있는 반려견·반려묘가 있지만 사람으로 대우하지는 않는다. AI에 인격을 부여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우리 가치가 지켜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도 먼 옛날 누군가가 만들어서 지구에 툭 던져 놓은 것이 오늘날에 이른 AI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한 느낌이 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