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55>센스, 난센스

박재민 교수
박재민 교수

누구든 트라우마를 겪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도 허투루 여길 일이 아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차가 언젠가부터 말썽이었다고 한다. 냉각수가 채워 넣자마자 사라졌다. 한겨울에 온풍이 나오지 않으니 난처한 일이다. 여러 차례 수리 끝에 차를 바꿨다고 한다. 얼마가 지났을까. 또 따뜻한 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냉각수가 덜커덕 빠졌구나'하고 생각했다 한다. 며칠 달달 떨며 다니다가 정비센터에서 알아낸 문제점은 실내온도를 18도에 맞춰 놓은 것이었다. 한동안 냉각수로 사달을 겪고 보니 찬바람 앞에서 냉각수만 떠오르더란 얘기였다.

여느 세상사처럼 생각의 조그만 차이가 기업에도 큰 차이를 만든다. 한편 그럴 법한 일이 달리 보면 어처구니없는 선택일 때도 있다. 어찌 보면 둘 다 나름 맞는 말이지만 기업은 그 가운데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정답 없는 곳에서 정답을 찾는 게 경영이라는 역설도 그래서 나온 듯하다.

예전에 '로터스 1-2-3'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즘에야 '엑셀'이 대세지만 한때는 이것이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보편자였다. 요즘 용어로 이른바 '킬러앱'인 셈이었다. 애초 매출 목표는 100만달러였지만 설립 첫해에 매출 5000만달러를 넘겼다. 여기서 그 세 배가 되는데 고작 2년이면 족했다.

덩치가 커지자 창업자 미첼 케이포와 조너선 색스는 매킨지컨설팅 출신 짐 맨지를 최고경영자(CEO)로 불러들인다. 맨지는 포천500 기업을 모델로 삼는다. 직원도 1000명을 넘어선다. 그런데 서서히 문제가 불거졌다. 후속 제품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케이포는 실험을 한 가지 해보기로 한다. 로터스 첫 직원 마흔 명의 이력서를 슬쩍 이름만 바꿔 취업 지원자 풀에 넣어 봤다. 물론 이들이 좀 별나기는 하지만 나름 분야 최고였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느 한 명도 인터뷰 요청이 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로터스는 혁신을 달리 해석하고 있었고, 정작 로터스를 만든 혁신을 역선별하고 있은 셈이었다. 물론 로터스는 혁신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경영 조직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케팅과 영업이라는 양날의 칼에 혁신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았다.

케이포는 로터스 노트를 개발하면서 본사로부터 20마일 떨어진 곳에 개발실을 차리도록 한다. 좁은 로터스 문화나 마케팅, 영업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의 성공 후 반응도 나뉘었다. 한편에선 후속작을 거론했다. 나름 끄덕여지는 반응이다. 그러나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CEO의 판단은 좀 달랐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로맨스+선박 침몰' 영화를 또 접하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나스카피 인디언들이 어디서 사냥할지 정하기 위해 한 가지 의식을 치렀다. 순록의 어깨뼈가 갈라질 때까지 불에 올려놓고 기다렸다. 그리고 갈라진 것을 지도처럼 이용했다. 결과는 효과가 당장 있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장기로 보면 큰 이득이 됐다. 왜냐하면 이렇게 무작위로 다니다 보니 어느 사냥터든 고갈되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 보면 결국 난센스처럼 보여도 달리 보면 말이 되는 것도 있는 셈이다. 하여튼 로터스 소프트웨어는 설립 12년 만인 1995년 IBM에 35억달러를 받고 팔렸다. 일설에는 로터스 노트 덕분이었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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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