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밸리'가 들썩인다. 개발자 몸값 때문이다. 한 달 사이에 거의 '랠리' 수준으로 경쟁이 붙었다. 쿠팡이 시작점이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연봉을 앞세워 개발자 싹쓸이에 나설 태세였다. 두둑한 스톡옵션에 억대 연봉을 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 이름난 대기업 직원을 같은 조건으로 영입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년 경력직 기준 6000만원, 경력 개발자 200명에게 50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당장 개발자가 많은 게임업체를 중심으로 비상이 걸렸다. 이직 행렬이 예상되고 신규 채용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도미노' 연봉인상이었다. 기존 직원은 800만원 인상, 신입 개발자는 초봉 5000만원으로 암묵적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졌다. 쿠팡에 이어 넥슨도 초임 연봉을 개발직 5000만원, 비개발직 4500만원으로 확정했으며 직원 연봉도 일괄 800만원 인상했다. 넷마블도 넥슨과 같은 수준으로 맞췄다. 크래프튼과 엔씨소프트는 한술 더 떴다. 크레프튼은 개발직 2000만원, 비개발직은 1500만원으로 인상했다. 개발직은 6000만원, 비개발직 5000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엔씨는 아예 연봉 상한선을 없앴다. 게임업체에 그치지 않고 배달의민족, 직방 등 빅테크 기업까지 가세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연봉 배틀' 사태의 전모다.
연봉을 올려 준다는 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몸값이 곧 능력인 세상이다. 노동의 가치를 높이 쳐 준다면 직장인으로서 최고 행복이다. 더구나 개발자는 일에 비해 대우가 빈약하다는 불만이 컸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던 연봉수준을 정상화하고 인재의 중요성을 안팎에서 인정해주면 가물가물했던 주인의식도 절로 생겨날 것이다. 기업도 나쁘지 않다. 인재를 소중히 여긴다는 이미지는 지금과 같은 인력난에 큰 힘이다. 높아진 업종 위상을 알리면서 사업 확장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과제는 지속가능할 지 여부다. 연봉인상 배경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탓이다. 개발자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기업은 늘 'A급' 최고인재에 목말라 있다. 사람은 많아도 정작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불만이 컸다. 몸값이 폭등한 데는 반대로 그만큼 고급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희소가치가 커서 파격연봉이라는 채용 조건이 등장했다. 덩치를 불린 유니콘 기업이 공격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정작 인력 풀은 변함이 없다는 게 아쉬움이다. 소수인재를 놓고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 불가피하다. 결국 도미노 연봉 인상이 한시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공산이 크다.
시장에서 잡음도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위화감이다. 여전히 많은 중소기업에게 연봉 인상은 딴 나라 이야기다. 회사 내에도 직군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지나친 양극화는 사기를 떨어뜨린다. 인재 쏠림현상은 기업 생태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력의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경쟁은 무뎌진다. 지배력이 큰 기업 위주로 시장서열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도전과 혁신 보다는 안정과 수성에 몰두하는 기업이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역동성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
멀리 봐야한다. 리딩 기업일수록 생태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연봉에 앞서 인력 풀을 늘리는 일이 더욱 급선무다. 시대에 맞는 기업문화도 필요하다. 오직 1등을 위해 달리는 기업은 산업화시대에나 적합하다. 정보화를 넘어 디지털로 넘어가는 4차 산업혁명시대다. 열린 마음, 협업, 상생이 시대정신이다. 여전히 수많은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신념 하나로 쪽잠을 자며 휴일 없이 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