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A씨는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QR코드 인증대신 수기명부에 전화번호를 작성했다. 어느 날부터 A씨는 유독 070으로 시작하는 스팸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많이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수기명부가 외부로 유출돼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뉴스를 접했다.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제공한 휴대전화번호가 영리 목적으로 이용된 셈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위원장 윤종인)가 이 같은 국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선보인 '개인안심번호' 제도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됐다. 개인정보위는 국민이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방문 시 안심하고 수기명부를 작성하도록 개인안심번호를 개발, 지난달 19일부터 시행 중이다.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수기명부에 기재한 휴대전화번호가 코로나19 방역 목적이 아닌 사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선보였다.
개인안심번호는 휴대전화번호를 무작위로 변환한 문자열이다. 국민은 네이버, 카카오 등 QR코드 발급기관을 통해 개인안심번호를 발급받아 휴대전화번호 대신 명부에 기입하면 된다. 한 번 발급 받은 개인안심번호는 폐기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개인안심번호 개발에는 정부 외에 시민 개발자가 큰 역할을 했다. 고등학생, 대학생, 일반 직장인 등 7명의 시민개발자(시빅해커·개발자 등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회문제 해결)가 두 달간 밤샘 작업 끝에 개인안심번호를 내놨다.
지난 주말, 알서포트 영상회의 솔루션 '리모트 미팅'을 이용해 개발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났다. 개발자들은 더 많은 시민이 안전한 개인안심번호를 사용해주기를 당부했다.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7인 의기투합해 개인안심번호 개발
개인안심번호 개발은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이 시빅해커로 유명한 권오현씨(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게 아이디어를 요청하며 시작됐다.
권씨는 “윤 위원장이 수기명부의 휴대전화번호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요청했다”면서 “협업 툴 '슬랙'에 아이디어를 내보자고 공지한 후 뜻이 있는 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빅해커는 정보통신기술(ICT) 개발자나 관심 있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회문제를 ICT와 데이터를 활용해 해결하는 공익 활동가다. 우리나라는 '코드포코리아'가 대표적 시빅해커 사이트다. 코드포코리아는 지난해 '공적마스크앱' 개발에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코드포코리아는 여러 아이디어 가운데 개인정보위와 논의해 개인안심번호를 최종 결정한 후 두 달 가량 밤낮 없이 개발에 집중했다. 권씨를 주축으로 손성민군(고등학생), 진태양씨(대학생), 유경민씨(직장인), 김성준씨(직장인), 오원석씨(직장인), 심원일씨(직장인) 등 총 7명이 개인안심번호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진태양씨는 “낮에는 직장인, 학생 등 각자 본업에 충실하고 저녁 이후부터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밤샘 개발을 했다”면서 “다음날 오전 전날 완성된 부분을 개인정보위에 전달하고 다시 피드백을 받아 저녁부터 작업을 하는 과정을 한 달 이상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안심번호 '보안'·'편의성' 중점 개발…주변과 함께하길
7명의 시빅해커가 개인안심번호를 개발할 때 가장 고려한 부분은 '보안'과 '편의성'이다.
개인안심번호는 수기명부의 휴대전화번호 유출 등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다.
고등학교 3학년인 손성민군(대전 대신고) “암호화 알고리즘 설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서 “보안 때문에 자세한 알고리즘을 설명하기 어렵지만, 7명 멤버 모두 해외 사이트와 주요 알고리즘 등을 비교 분석하며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오원석씨는 “복호화(암호화 이전 버전으로 복구하는 것)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집중했다”면서 “개인안심번호를 모든 국민이 정말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 가장 필수 요소라 생각했고 모두가 이 부분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개인안심번호는 누구나 쉽게 사용해야 한다.
심원일씨는 “편해야 많은 이들이 사용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사용자 편의성을 세밀하게 살폈다”면서 “안심번호 구성 역시 어떻게 하면 쉽게 외우고 발음할 수 있을지 까지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말했다.
개발자들은 더 많은 국민이 안심번호에 관심 가져주길 부탁했다.
김성준씨는 “기업이 아니라 개인이 뜻을 모아 선의로 개발한 서비스이자, 국민이 안심하고 코로나19 방역에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개발에 참여한 것”이라면서 “주변에 많이 알려주고 더 많은 이들이 개인안심번호를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스크앱에 이어 이번 개인안심번호 개발까지 공익 활동이 이어지면서 시빅해커 관심도 높아진다.
권오현씨는 “사회가 겪는 여러 문제를 정부 주도로 해결하고 있지만 점차 시민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면서 “개인안심번호 개발을 함께 이끌어낸 개인정보위처럼 정부도 다양한 문제를 시민과 함께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원일씨는 “시민사회에는 함께 해결해야 할 이슈가 많다”면서 “시민사회만 논의하면 실체화가 어렵기 때문에 관련 정부 부처를 비롯해 기업도 참여해 정부, 시민, 기업이 함께 발전적 논의를 이어가는 공론화 채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