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의 온라인 개학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라고 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현황을 보면 사실 기적에 가깝다.
2019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8 정보통신기술(ICT) 친숙도 조사를 보자.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과 수업에서 디지털 장비를 사용하는 비율은 2.96%로, OECD 32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31위를 기록했다.
3%도 안 되던 상황에서 온라인 개학을 결정한 지 한 달도 안 돼 전국의 모든 학교가 디지털 기기로 수업한 것이다. 결정할 당시만 해도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정부·교사·학부모·학생들이 기적을 일궈 냈다.
교육부는 부총리부터 실·국장, 담당 직원까지 '월화수목금금금' 밤새 도시락 회의를 이어 가며 현황을 점검했다. 스마트폰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정도나 사용할 줄 알고 있던 연로한 교사들도 디지털 기기 기능 사용법을 알아 가며 온라인 수업을 했다. 수업 준비부터 본격 수업까지 온라인 수업은 몇 배 어려웠지만 '교육'부터 생각했다. 학부모들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자녀들의 숙제까지 챙기는 등 애를 쓰며 수업을 이어 갔다. 학생들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교육 당국과 교사, 학부모를 마냥 칭찬할 수는 없다. 아이들을 OECD 최하위 환경에 방치한 것이 다름 아니라 이들, 즉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우리나라 전 분야가 디지털 혁신을 감행하는 동안 이를 외면했다. 버스까지 와이파이가 터지는 마당에 학교만 가면 아날로그 세상으로 되돌아갔다. 정치인들도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며 교실 내 와이파이 설치를 반대하기도 했다. 미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할 학생들이 가장 '구시대적' 환경에서 공부하는 역설이 당연하게 펼쳐졌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디지털 대전환을 이뤄낸 것 자체로도 대단하던 1년이 지났다. 이제 원격수업 2년 차다. 그러나 1년 차와의 수업 수준은 비슷해 보인다. 초기에 발생한 기능 오류마저도 판박이다.
원격수업은 교육정보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으로 급하게 교실에 와이파이를 구축하곤 있지만 인프라 전반에 대한 개선이 없어 성능은 장담하지 못한다. 대학의 보안체계를 공공기관의 보안체계에 맞추려고 해서 한동안 혼란을 빚기도 했다. 나사가 빠진 듯 운영되는 정보화체계가 한둘이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정보화 운영 현황만 봐도 그렇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육정보화 업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정보부장을 임명한 초·중·고교는 전체 학교 가운데 48.7%였다. 2019년과 비교해 1.5% 상승한 수치다. 학교의 약 절반이 체계적으로 교육정보화를 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 현장에 물어보면 '젊은 교사가 게임을 잘해서' '과학교사이니까 그나마 정보기술(IT) 분야와 비슷해 보여서' 등 황당한 이유로 교육정보부장직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제 진짜 교육 환경 혁신을 실행해야 할 때다. 인프라를 갖춰서 교육과정 평가도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과학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정보화 자원과 전담 인력, 조직,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고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름만있는 정보화 시스템, 조직이 아니라 실제 교육환경을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 과정이 그대로 IT로 관리되고 그것이 학생부와 연계될 수 있어야 하며, 방대한 교육콘텐츠와 솔루션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정보는 철저한 보안 속에 보호돼야 한다. 교육격차 등 부작용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와 교육행정기관 등 교육 현장이 IT를 활용해서 혁신하도록 지원하는 데에는 단순히 제도를 갖추는 데 그치면 안 된다. 교육 정보화 지원도 법적 근거 마련을 비롯해 체계를 갖춰야 한다.
다행히 지난달 교육정보화기본법 발의로 첫걸음은 뗐다. 2017년에도 유사한 교육정보화진흥법이 발의됐지만 현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됐다. 법조차도 마련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교육정보화 발전에 기대할 것이 없다. 그 고생을 하고도 똑같은 순서를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