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연구수당 수임 논란 등으로 지난 18일 사의를 표명한 김기선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이 하루만인 19일 이를 번복하면서 GIST가 28년 역사 이래 가장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교수와 노조(직원)간 대립양상도 심해지고 있으며 사의 표명을 둘러싸고 총장과 참모진간 진실공방도 예상되고 있다.
김 총장의 수수방관적인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해결책 모색을 위해 구성원간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총장 사의 표명 진실은
김 총장은 18일 정오 무렵 기획처장이 작성한 'GIST 총장과 부총장단 사의 표명' 보도자료 초안을 교수평의회(교평)의장 휴대폰 스피커폰을 통해 전해 들었다. 당시 기획처장은 교학부총장 등 10여명의 보직교수와 함께 있었으며 김 총장은 교평의장과 차량을 타고 외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GIST 총장과 부총장단은 최근의 논란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였다'는 내용을 들은 김 총장은 간결하게 잘 작성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기획처장은 말한다. 이후 '긴급' 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보도자료는 홍보팀을 통해 곧 바로 출입기자에게 배포됐고 기사화됐다.
상황은 다음날 오전 급반전됐다. 김 총장은 홍보팀에 보도자료 회수 여부를 물은 뒤 사의 표명이 아니라는 반박자료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 총장은 이날 저녁 전자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퇴, 사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으며 다만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면서 “총장이 사인(결재)하지 않는 보도자료가 어떻게 외부로 나갈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기획처장은 “노트북에 적은 보도자료 내용은 부총장과 처장 등 10명이 함께 확인했으며 토씨하나 틀리지 않도록 작성해 배포했다”면서 “어떻게 총장 사의표명 같은 중요한 자료를 처장 임의대로 작성해 배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설령 김 총장이 부총장·처장단에게는 사의 표명을 하지 않았다 치더라도 같은 날인 18일께 이미 이사회에는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총장은 사임 번복 기사를 처음 보도한 20일 오전 전자신문과 통화에서 '저의 사의는 이미 이사회에 전달되었고, 지스트의 정관에 따라 3월 30일(화)에 예정된 제129회 정기 이사회에서 제 거취가 결정될 것입니다.'라고 한글 문서로 된 자신의 입장문을 보내왔다. 대상만 다를 뿐 사의를 표명했음을 인정했다.
◇교수와 노조(직원) 등 구성원간 갈등 확산
김 총장에 대한 GIST 노동조합 중간평가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이제 교수와 노조간의 갈등양상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창덕 생명과학과 교수는 22일 학내게시판에 게시한 두번째 글을 통해 노조가 김 총장에게 합의를 요구한 △학교 발전 태스크포스(TF) 팀 구성 △경영진 교체 △직원 인사위 5:5 구성 △인권·차별 방지 정책 시행 등 네 가지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학교 발전 TF팀 구성을 뜬금없이 총장과 노조만의 양자 협상 테이블 위에서 은밀히 작성되고 서명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경영진 교체 요구에 대해 “인사권을 노조가 관여해 보직자의 사임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은 엄연히 경영진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고 지적했으며 직원 인사위 5:5 구성은 “노조법에도 반하는 것이며 노조원 3명을 직원인사위 인사위에 포함시킨 실수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 교수는 “노조가 교수와 학생, 연구원 집단은 철저히 배제한 채 마치 모든 구성원이 현 경영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두 게시글에 대해 많은 교수들이 공감을 표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조는 전 교수 주장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경우 내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 자제하는 한편, 왜곡된 내용에 대해서는 구성원에게 진실을 적극 알릴 계획이다.
◇“총장이 사태 악화...비방·폭로전 삼가야”
GIST 사태는 김 총장이 애매하고 어정쩡한 태도로 취함으로써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김 총장의 도덕성과 리더십 부재 등을 정면 공격하고 있지만 김 총장은 이렇다할 반박이나 해명자료,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새 총장과 노조 외에 노조와 교수, 총장과 참모진간 등 구성원들의 불협화음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자신의 사의표명 등 거취문제도 이사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그동안 GIST가 나름 세계적인 연구력을 갖는 등 명문대로 자리 잡았지만 최근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하루 아침에 명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직원은 “GIST에 다닌다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총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구성원 모두가 비방과 폭로는 자제하고 학교 신뢰와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