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이 뜻밖에도 다른 감염병을 극적으로 감소시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감기와 폐렴은 절반 넘게, 독감 환자는 무려 98%가 줄어들었다.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식중독, 결막염 등의 감소세도 뚜렷하다.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일상화된 덕분이다. 그러나 방역수칙의 꾸준한 실천에도 국내 치사율이 코로나의 3배인 '결핵'만큼은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핵은 9000년 전 선사시대 사람의 뼈에서도 병흔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전염병이다. 매년 200만명 이상이 결핵에 걸려 사망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결핵의 시대'라 할 정도로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결핵은 밀폐되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곳에서 잘 퍼졌다. 산업 발달과 도시화로 전염 위험이 더 커진 것이다. 골방에서 창작 활동에 골몰하던 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창백한 얼굴로 각혈을 하다 숨지는 등 결핵은 한때 지식인 질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흡혈귀의 짓이라 믿을 정도로 아는 게 없어 더 무섭게 여겨지던 결핵은 19세기 말 '세균학의 아버지'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이라는 원인을 밝히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후 결핵 예방과 치료를 위한 연구개발이 계속돼 20세기 초 마침내 프랑스 세균학자 알베르 칼메트와 수의사 카미유 게랭이 BCG 백신을 개발, 인류는 승기를 잡게 된다.
예방 백신과 치료제가 보편화하고 인류의 위생과 영양 상태가 빠르게 개선되면서 결핵은 점차 일부 빈곤 국가를 제외하면 사라진 질병으로 인식돼 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역시 1970년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폐결핵 치료제인 에탐부톨의 합성에 성공하며 결핵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핵 퇴치를 위해 연구실의 불을 밝힌 선배들의 DNA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KIST가 개발한 면역증강제가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앞당기고 있고, 가까운 미래인 고령화사회를 대비한 치매 치료제 연구 역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느새인가 다시 결핵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 1위, 사망률 2위라는 불명예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이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감염병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도 결핵은 신규 환자 신고 건수가 전년 대비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으니 방역수칙 생활화도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질병관리청은 결핵의 50%가 감염 후 2년 내, 나머지 50%는 평생 잠복 상태로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발병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향후 몇 년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할 일이다.
감염병은 최근 그 구조와 작동 방식 등에 관해 많은 지식이 쌓이고 있지만 예측이 어렵고 효과적인 대응에 어려움이 많다. 민간 기업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두기 어렵다. 따라서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진단과 치료, 예방의 통합적인 연구가 어느 분야보다 절실하다. 특히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감염병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향후 갑작스러운 발생과 증가세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구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세계 결핵의 날'을 맞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여전히 끝나지 않는 결핵과의 전쟁은 꾸준한 대비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닥쳤을 때 시작해서는 결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당면한 사회문제 해결과 함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과 준비가 공공연구기관의 존재 이유여야 한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sjyoon@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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