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자본주의 근간을 이뤄 온 시장경제와 기업의 목적이 최근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자본주의 재설정'을 주제로 다뤘고, 미국 CEO협의회에서는 기업의 존재 목적을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에서 '이해관계자'로 바꿨다. 이처럼 200년 이상 지속돼 온 경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패러다임을 '한 시대의 보편적인 인식 체계'로 정의한 토머스 쿤은 사회도 생물처럼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인식 체계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오늘날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널리 쓰이는 이 개념은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전환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주주에 대한 가치 창출이 최우선적 과제이던 과거와 달리 비재무 성과를 통합한 지속가능경영 체제의 수립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투자를 강조하는 ESG다.
ESG는 환경보호(E), 사회적 책임(S), 경영체제(G)를 뜻한다. 최근 ESG 이슈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ESG 평가가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ESG 투자 총액은 2018년 이미 30조7000억달러까지 확대돼 전체 투자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ESG 채권 발행액은 2020년 350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요구 받아 온 기업들은 선행과 기부를 통한 사회 공헌, 협력사 지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등에 집중했다. CSR가 권유와 선택 문제였다면 ESG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좌우하는 피할 수 없는 패러다임 변화라 할 수 있다. 종전 재무적 성과를 바탕으로 투자하던 금융기관들이 ESG 인증을 요구하게 됐고, 좋은 평가를 받는 기업만이 투자를 받고 채권을 발행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주요 국가의 ESG에 대한 권고와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ESG 정보공시 의무화 계획에 이어 최근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녹색산업 분류체계)'를 구축, ESG 정보 중 환경 분야에 대한 명확한 판단 지침을 제시했다. ESG 공시가 의무화되면서 2022년부터 모든 회원국의 대기업들은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관련 활동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또 유엔 주도로 자본시장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ESG를 중시해야 한다는 '책임은행 원칙'(PRB)이 제정됐고, 이미 180개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간에 사회적 책임 투자 기준이 강화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ESG 경영전략 수립은 불가피하게 됐다. 국내에서도 금융위원회가 2026년부터 전 코스피 상장사에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하며 경영체계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이제 기업에 ESG 경영이란 생존 전략이자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ESG 투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안이 됐다. 현재 ESG의 평가 기준은 국가와 기관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문제(S)를 다루는 평가에는 동반성장에서 다루는 이슈들이 주요한 요소로 녹아 있다. 직원, 주주, 고객만이 아닌 협력사와 사회와 함께하는 동반 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우수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결국 ESG 경영은 주주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이해관계자와 동반 성장 철학을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yngkim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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