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표면의 72%를 차지하는 해양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지구 생명체의 80%가 서식하고 있으며, 에너지·광물·바이오 등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면 실생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를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과학기술 발전으로 바다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는 바다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첨단 과학 장비가 탑재된 연구선을 띄워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온누리호와 이어도호가 취역하면서 해양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해양조사와 연구능력을 갖춘 종합 연구선을 확보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먼바다에서도 연구가 가능해졌고, 국내 해양조사 역량이 세계적 수준에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온누리호는 심해저 자원탐사를 위해 태평양으로 출항한 것을 시작으로 인도양, 남극 세종과학기지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온누리호가 대양연구의 주역이었다면 이어도호는 주로 연근해 연구에 투입됐다. 유속 관측이나 해저 지층탐사기 등 정밀 해양 장비를 고루 갖춰 해양방위 연구, 배타적경제수역(EEZ) 해양광물 정밀연구 등을 수행했다. 또 국가적 재난 상황 발생 시 조류, 해저 퇴적물, 수온 분포 등 바닷속을 정밀하게 관측하는 한편 사고 수습을 위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했다. 두 연구선 모두 우리나라의 해양과학기술 수준을 높이는데 여러 성과를 내 왔지만 점점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운항 효율이 떨어지고 안전성이 우려돼 운항 범위나 횟수가 줄고 있다.
이어도호가 30살을 맞은 2021년 3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HK조선과 이어도호 대체 종합연구선 건조 계약을 맺은 것이다. 새롭게 건조될 연구선은 이어도호를 대신해 우리나라 관할 해역과 지역 해를 대상으로 연구 임무를 부여받을 예정이다. 주요 제원은 총톤수 약 740톤, 전장 62m, 폭 11.6m, 순항속력 12노트이다. 32명의 연구자와 승조원이 승선해 3000해리 이상을 운항할 수 있다. 연구선은 애초 500톤급으로 논의됐지만 정밀 고정관측 운영을 위한 정밀위치유지시스템, 수중예인체 위치측정시스템 등 첨단 연구장비를 갖추면서 규모가 커졌다. 대기오염방지 3차 규제(IMO TIER3)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으로 건조된다. 취항 후 해양기후·환경 특성, 해양재난재해 방제 연구, 해양방위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올해 건조를 시작해 2023년 실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같은 날 고려조선과 독도 전용 조사선 건조 계약도 진행됐다. KIOST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서는 독도를 수시로 오가며 해양생태계·보전·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전용 조사선이 없어 조사를 나갈 때마다 민간 어선을 용선하거나 고무보트를 사용해 왔다. 특히 독도를 오가는데 1시간 40분가량 소요돼 실제 연구 활동 시간은 하루 2~3시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상이 좋지 않은 날에는 조사가 불가하다. 25톤급으로 건조될 예정인 독도 전용 조사선이 취항한다면 연구자가 수일 동안 선 내에서 활동이 가능하며, 다양한 연구 장비의 탈부착이 가능해 독도 연구뿐만 아니라 해양주권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은 해양을 제2의 국토로 여기고 연구선을 활용해 자국 경제수역을 지키는 한편 공해상 해양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해양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영해나 EEZ의 중첩을 두고 해양 영토를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연구선은 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양연구와 조사를 통해 우리 바다를 지켜 줄 파수꾼 노릇도 한다. 30년 전 이들 두 연구선의 취항으로 해양 연구의 바닷길이 열렸듯이 이번 신규 연구선 건조로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술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정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ckpark@kio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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