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반도체 대란...정부는 업계의 '손톱 밑 가시'라도 뽑아야

'반도체 품귀'에 국내 전자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은 미리 대응,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러나 반도체 재고가 동난 중소기업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기보다 훨씬 심각한 생산 차질과 수익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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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일부 중소·중견 기업은 가전 제품 내부 설계를 바꿨다. 구하기 어려운 반도체를 다른 부품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핵심 부품을 바꾸고 재출시하면 전자파 등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 인증만 길게는 2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가전 성수기인 여름철을 앞두고 수많은 중소 가전업계가 전정긍긍하고 있는 이유다.

중소 PC업계의 상황도 심각하다. 이들 기업은 주로 중국 공장에서 PC를 생산하고 있지만 현재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공장 가동률이 30% 아래로 떨어졌다. 중소 PC 업계는 공공기관 PC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공공 조달 PC 시장에서 납기일을 어기면 무거운 패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납기지체상금을 내거나 입찰 시 평가가 감점을 받는다.

정부에서도 국내 산업계의 반도체 품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갑자기 반도체 공장을 지어 공급을 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규제와 인증이라는 중요한 인프라를 활용해 중소업계의 숨통을 틔울 '손톱 밑 가시'를 빼내 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품귀 때문에 기업이 주요 부품을 변경해서 전자제품 인증을 요청할 때 '패스트트랙' 제도를 일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도한 서류 업무 등으로 2개월 넘게 걸리는 인증 과정을 몇 주로 줄여도 중소·중견 업계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공공조달 PC 시장에서도 반도체 품귀에서 비롯한 납기 지연은 일부 유예 기간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중국 PC 생산 공장이 일제히 '셧다운' 됐을 때도 조달청은 업체에 납기 지연에 대한 패널티를 지우지 않았다.

업계는 올해 생산 차질과 부품 가격 상승 등으로 지난해보다 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며 우려하고 있다. 다른 어떤 해결책보다 정부가 빼내 준 '손톱 밑 가시' 하나가 중소기업에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