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누가 창조했을까.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희생해 인간에게 불을 전할 때도 판도라가 해괴한 상자를 열어 온갖 재앙을 쏟아낼 때도 불평등은 없었다. 인간을 만든 어떤 창조주도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며 범인으로 사유재산제를 지목했다. 결국 불평등은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불평등은 성별, 인종, 경제적 수준, 문화적 배경, 종교 등을 이유로 사람이 부당하게 차별받는 것이다. 혼자 사는 세상에 불평등이 있을 수 없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것이 공동체인데 공동체 안에서 불평등이 발명됐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불평등이 생겨나는 원인도 다양하다.
정신적 측면에는 많이 가지려는 탐욕, 가족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선하는 이기주의, 불평등을 보고도 방관하는 무관심이 있다. 기술적 측면에는 희소가치가 있는 자원, 기술, 기타 유·무형 자산을 독점하고 다른 사람의 이용을 막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짧은 칼럼으로 다루기에는 버겁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불평등 관계를 살펴보고, 인공지능(AI) 세상에서 불평등을 대하는 해법을 고민해 본다.
정부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 아래 초고속 인터넷망과 이동통신망 구축, 개인 컴퓨터 보급, 소프트웨어(SW) 정규 교육, 정보검색 및 콘텐츠 미디어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이동전화 등 서비스를 대다수 국민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 등 정보통신 분야에서 국민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국민이 정보통신 시장에 공급자 또는 소비자로 참여하는 비율이 늘면서 불평등이 줄었다.
그러나 대규모 정보통신 시설과 서비스를 독과점한 기업이 나타나고, 디지털 경험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 소외도 있었다. 전기통신사업법 등 법령 제·개정을 통한 공정경쟁 환경 조성, 시장지배력 남용 억제, 취약지역 주민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해 왔다.
AI도 기존 정보통신 발전의 연장선에 있다. 빠른 일자리 감소와 그에 따른 취약계층 증가가 가져올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AI는 고품질 빅데이터의 수집·이용, 고성능 컴퓨팅 능력과 알고리즘을 갖출 수 있는 거대 기업에 유리하다. 많은 자본과 기술이 요구하는 AI시스템을 갖춘 자는 시장지배력을 형성하기 쉽고, AI 시장에서 소외되거나 일자리를 잃는 국민은 취약계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
부의 편중은 불평등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인도 활동가 반다나 시바는 정보통신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뺏고 온라인 유통플랫폼 등 실리콘밸리 기업에 부를 몰아 주는 범죄경제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미래 핵심 산업인 AI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해결책은 없는가.
AI 성장으로 쌓이는 상위계층의 부를 거둬 하위계층에 직접 배분하는 정책은 거센 반대와 논란만 가져와 효과를 보기 어렵다. 중산층의 AI 활용 기회와 능력을 고도화해 한국 경제의 두터운 몸통과 허리가 될 수 있게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불평등을 해소하는 어떤 정책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위계층에 대해서는 정부 및 민간의 비대면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AI 환경과 일자리를 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AI 역량과 경험 확보에 최종 목표를 둬야 한다. 상위계층이 AI를 악용해 경제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AI를 통해 국민의 창의가 꽃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도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 법제도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AI시대 불평등 해소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