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막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 축소 정책이 저가 제품, 부실 공사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기존 350만원이던 완속 충전기(7㎾급) 보조금을 올해부터 200만원으로 내렸다. 보조금 이익이 줄어든 만큼 충전사업자가 소비자 접근성이 뛰어난 장소에만 충전기를 설치, 사업성을 높이라는 취지로 취해진 조치다. 이전까지 충전기 보급·설치만으로 대당 50만~100만원 이익을 낸 사업자 수익 구조를 '설치비 마진'이 아닌 '충전서비스'에서 찾게 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줄어든 보조금은 정부 의도와 달리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 충전기 보조금이 줄면서 충전기와 공사비가 20~30% 깎였다. 충전업계는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충전기 설치 장소까지 제한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산 저가 부품을 대거 장착한 충전기까지 등장했다. 보조금 인하로 충전사업자는 지난해까지 70만~90만원 하던 충전기를 60만~70만원으로 내려 발주하고 있다. 충전기 단가를 낮추면서 충전기 케이스(외관)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을 중국산으로 채우는 제조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충전기 공사는 더욱 심각해졌다. 사업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 90만~100만원의 충전기 공사비를 60~70만원 수준으로 내려 발주하는 실정이다. 대부분 사업자는 전력 인가를 위해 한국전력공사에 지불하는 한전불입금(43만원)을 내야 하는 설치 장소는 아예 신청조차 받지 않고 있다. 전기공사 범위가 30m를 초과하거나 지중공사가 필요한 경우 역시 신청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충전기 사용 편의를 위한 공사가 아니라 사업자의 부담금이 없는 공사만 골라 받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나가 고장 나면 전체를 사용할 수 없는, 검증 안 된 다채널·키오스크 제품이 등장하는 등 저가 제품과 부실 공사가 우려된다”면서 “정부가 보조금을 낮춘 건 사업자가 돈을 들여서 정말 필요한 곳에 충전기를 설치하라는 취지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며 우려했다.
정부가 올해 처음 보급하는 '과금형 콘센트 충전기'도 부실한 정책 기준 탓에 논란을 빚고 있다. 환경부는 국가 형식인증을 받은 과금형 충전기가 없다는 이유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4월 1일 이전 생산품에 한해 보급을 인정해 줬다. 그러나 4월 1일 이전 생산품을 확인할 방법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관련 업계의 불만이 높다. 이미 미인증 설치 사례가 적발된 만큼 제조일을 조작할 공산도 크다. 이내헌 전기차산업협회 부회장은 “인증도 받기 전에 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정부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보급 목표 달성에만 급급하다”면서 “이미 미인증 제품이 논란이 된 만큼 부품 발주서와 관련 세금계산서 제시 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우리나라의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2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부의 탁상공론식 전기차 충전기 보급 정책으로 충전기 제조사나 충전사업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