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기차 충전서비스 업계에서 타사 충전 고객 가로채기 경쟁이 시작됐다. 마치 휴대폰 '기기 변경'(기변)이나 번호이동과 같은 형태다. 이런 현상은 안정적인 고정 고객 확보 차원도 있지만 최근 대기업들이 충전 업계 투자에 나서면서 충전기 운영 대수를 늘려 몸값을 키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충전기 제품 비용부터 공사·운영비까지 전부 나랏돈으로 구축한 충전시설이 일부 업체들의 몸값 부풀리기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복수의 외주 충전기 영업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가 지정한 충전서비스 업체인 P·K·A사 등이 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타사 충전기를 대상으로 한 기기 변경 영업을 위해 외부 영업조직을 꾸리고 있다.
충전기는 100% 정부 보조금으로 구축된 설비로 설치 후 2년이 지나면 충전시설 소유권자인 아파트 등 부지 제공자의 재량에 따라 시설물 교체나 철거 등이 가능하다. 충전 업계는 이 점을 노리고 주로 2년 넘은 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기기 변경 영업을 통해 사세 확장에 나섰다. 전기차 초기 시장 때부터 정부가 충전기 제품을 위시해 공사·운영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생기는 이상 현상이다.
충전 사업을 위해 자체 투자보다는 정부 보조금 사업에 집중했지만 올해 보조금 예산이 이달 초 조기 마감되면서 투자비가 적은 기변 영업이 성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 업체는 외주 영업사를 통해 충전기당 수십만원의 영업비만 쓰면 100만원 상당의 공사비와 50만원 상당의 한국전력공사 불입금 등을 쓰지 않아도 된다. 30만~60만원 하는 충전기기 교체만으로 손쉽게 운영 대수를 늘릴 수 있다. 여기에 이미 2년 넘게 사용한 시설이다 보니 고객 이용률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어 수익성 개선에도 유리하다.
업계 관계자 “충전기 기변이 불법은 아니지만 나랏돈으로 설치해서 기존에 잘 사용하고 있는 멀쩡한 시설물을 철거해 운영권을 빼앗는 건 낭비 요소가 될 수 있다”면서 “공사비나 한전 불입금 등 투자비를 최소화하면서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을 선별할 수 있어 여러 업체가 이미 기기 변경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전 업계는 이 같은 충전 고객 가로채기 경쟁이 점차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데다 올해 들어 국내 대기업들의 충전 시장 진출이 잇따르면서 충전사업자들이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충전기 운영 숫자 늘리기에 혈안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국가 보조금으로 설치된 충전기에 대한 유지 기간이 2년이어서 제재할 방법은 없다”면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보급하는 충전시설의 의무 유지 기간을 5년으로 늘린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