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빛나는 기계 통로로 수트케이스를 든 여행자가 걸어들어간다. 출발지는 2035년 대한민국, 도착지는 전쟁으로 황폐해지기 이전인 현재다. 통로의 정체는 '업로더'라 불리는 타임머신. 여행자는 잿빛으로 물든 미래에서 탈출하기 위해, 혹은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로 향한다.
드라마 '시지프스'는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한태술(조승우 분)이 개발한 업로더는 양자 기술을 응용, 인간을 분자나 원자단위로 분해해 시공간을 넘어 전송한다는 설정이다. 극중 한태술이 창업자로 등장하는 기업의 이름 역시 '퀀텀앤타임', 양자와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의 기본 이론으로 초정밀 반도체 등 개발에 토대가 된 학문이다. 아울러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바탕으로 각종 시간여행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 이론적 배경을 뒷받침하는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1920년대 발표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두 개의 관측 가능량을 동시에 측정할 때, 둘 사이 정확도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이론이다. 이는 불확실성이 갖는 확률론적 특성으로 원인과 결과가 뒤엉키지 않는 시간여행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물론 시간여행은 다양한 역설(패러독스)을 동반한다. 과거로 돌아와 타임머신 개발을 막거나 자신의 부모가 서로 만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시간여행을 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모순이 생긴다. 사소한 변수 하나로도 미래가 통째로 뒤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고전 영화 백투더퓨처에서는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대신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존재가 점차 사라지는 형태로 타임 패러독스를 묘사했다. 시지프스에서도 아직 겪지 못한 미래의 기억을 읽은 주인공이 미래에서 자신을 찾아온 연인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은 이 같은 여러 역설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됐다. 우주에서 가능한 모든 시간선이 무한히 갈라지고 전부 실재한다고 전제하는 해석 방식이다. 시간여행으로 변화된 미래와 변화되지 않은 미래가 각기 다른 곳에 모두 존재한다는 의미다. 평행우주 혹은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토대로도 쓰인다.
현실 세계에서 아직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할 만한 기술 개발은 요원하다. 다만 더는 쪼갤 수 없는 양자적 특성을 정보통신분야에 접목, 생활에 활용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 이뤄지고 있다.
강력한 보안성이 강점인 양자암호통신과 양자내성암호 등은 수년 내 상용화를 앞뒀다. 차원이 다른 초고속 연산 능력을 제공하는 양자컴퓨팅도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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