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청년이 점쟁이를 찾았다. “재상이 되고 싶습니다.” 점쟁이는 어림없다고 했다. 청년이 다시 물었다. “의사가 될 순 없습니까?” 점쟁이가 꿈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를 물었다. 백성을 구할 수 있다면 뭐든 좋다고 했다. 점쟁이가 정색하고 말했다. “관상으로는 재상도 의사도 어렵네. 그러나 심상(心相)이 좋아 재상이 되고도 남네.” 송나라 재상 범문정의 이야기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심상만 좋으면 될까. 실력이 우선이다.
평생 남의 흠을 찾아내던 분도 사생활 피해로 고생하던 분도 자의 반 타의 반 양보를 거듭하던 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다른 조건은 없다. 국민투표에서 다수표를 확보하면 된다. 그러나 다수표를 얻은 분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한국이 잘되란 보장은 없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어떤 분이 대통령이어야 할까'라고 질문을 바꾼다면 전혀 다른 답을 찾아야 한다.
일반조건이다. 대통령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임기가 5년에 불과한 탓이다. 정부 조직 개편, 레임덕으로 앞뒤 잘라내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어림잡아 3년이다.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지 오래 고민해 온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5년 안에 이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일은 과감하게 위임해야 한다. 전임자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에도 보석 같은 것이 있다. 약간만 공들여도 성과를 내기가 쉽다. 간판만 그럴 듯하고 실속 없는 정책은 들어내야 한다. 대통령만 보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을 보자. 외교안보는 누구, 경제는 누구, 교육은 누구, 과학기술은 누구. 묘책이 딱 딱 떠오르는 참모를 둔 분이어야 하고, 그들이 장관을 맡아서 일을 해야 한다. 엄격한 청문 절차를 고려할 때 참모 풀이 넓고 탄탄해야 한다. 선거운동 전문가는 정책행정 전문가가 아니다. 대통령 당선에 공이 있다고 해서 중요한 자리를 맡아선 안 된다. 공무원은 정년까지 많이 남았지만 대통령은 기껏 5년이다. 공무원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하는 시늉만 낸다. 성과를 내기 위해선 공무원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이다. 정보화 이후 공공·민간에 수많은 데이터가 쌓여서 AI 알고리즘과 결합해 창작·발명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 중심의 지식재산 생태계에 개인 참여가 늘고 있다. 유형자산 중심에서 무형자산 중심 국가로 변모시킬 절호의 골든타임이다. 퀄컴 등 글로벌 기술기업의 영업이익은 엄청나다. 추가 비용 없이 로열티로 수익을 낸다. 이제 한국을 정보화 강국에서 지식재산 강국으로 바꿔야 한다. 무형자산의 가치를 느끼면 아파트 등 유형자산에 대한 집착도 줄어든다. 여기서 출발해야 부동산 문제도 풀린다. 한국에서 퍼스트무버 데이터·AI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면 좋겠다. 과거 산업체계에 맞춰 있는 정부 조직을 획기적으로 개편해 원스톱 정책·규제 시스템으로 고쳐야 한다. 과학기술, 정보통신, 콘텐츠가 지식재산이라는 큰 범주 아래에서 섞일 수 있어야 AI 시대 융합 환경에 대비할 수 있다. 여기에 고용·교육·사회 인프라 등이 자연스레 연계되는 생태계가 나와야 한다. 정부 부처 간 협업이 잘되도록 확실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컨트롤타워를 두거나 큰 조직으로 합치는 것도 필요하다. 얽히고설킨 매듭을 풀다 보면 5년은 금방이다. 칼로 무 자르듯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 정부가 하지 않아야 될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찾아서 과감히 그만두자.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필요한 일은 민간으로 과감하게 넘기자. 과거 통신 사업을 민영화해 정보화시대 주력이 됐고, AI 시대 핵심 네트워크가 되지 않았는가. AI를 이용해 인권 사각지대를 찾고 재난을 점검, 극복해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AI를 활용해 건강, 의료, 주거 확보 등 사회안전망도 늘여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이 너무 많다. 법이란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지우기 위해 만든다. 법이 많으니 폐해도 많다. 법을 막기 위해 또 법을 만들기도 한다. 법을 줄여 나갔으면 좋겠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AI를 몰라도 AI 시대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AI-IP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