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Ctrl+Z에서 Ctrl+S로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작년 12월, 트위터는 '2020년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이라고 질문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자사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활용해 기상천외한 답을 달았다. 리트윗이 가장 많은 회사는 Ctrl+Z(실행취소 단축키)로 대답한 어도비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ELETE(삭제)로, 유튜브는 Unsubscribe(구독 취소)로 잃어버린 2020년을 표현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의 2020년 한 단어를 고르라면 '90%'를 선택하겠다. 작년 7월, KRISS가 세계 2번째로 개발한 코로나19 바이러스 표준물질이 바이러스 전체 유전체의 약 90%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체 정보가 많을수록 바이러스 정보가 많다는 뜻으로, 이를 활용하면 변이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으며 진단 효율과 신뢰성을 향상할 수 있다. KRISS 표준물질은 진단키트 개발 및 검증에 활용되고 있으며, 국제비교 참여를 통해 국제적 동등성을 확보했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면서 건강한 삶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이 변화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 활동량이 급감해 살이 확 찐 자라는 확찐자 등 신조어도 생겼다. 20세기를 지나며 축적된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능, 기후변화 및 미세먼지, 탄소에너지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 등 전 지구적인 과제를 긴급히 해결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우리 앞에 닥친 대전환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분야는 바로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만이 다가오는 위기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으며, 포착된 문제는 연구개발(R&D)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KRISS는 축적된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전과 발전 방향을 담은 'KRISS 미래비전 2035'를 수립했다. 다가오는 미래상 정립을 위해 SI 단위 재정의, 팬데믹, 탄소중립, 디지털전환, 양자, 안전 등 메가트랜드 주요 키워드를 분석해 새로운 비전인 '세상의 기준을 만드는 KRISS'를 이끌어냈고, 외부전문가와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표준과 측정기술 분야 발전 방향과 전략을 설정했다.

5월 20일에는 KRISS에서 세계측정의 날 행사가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세계측정의 날은 1875년 세계 최초로 체결된 국제조약인 미터협약을 기념하고, 측정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올해 주제는 건강과 행복에 대한 욕구가 커진 만큼 '측정표준, 건강한 삶을 만나다'로 정해졌다. KRISS는 공식 유튜브로 온라인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바이오·헬스·의료 등 건강 분야 주요 연구성과와 향후 계획을 공유할 예정이다.

KRISS는 작년에 '안전측정연구소'를 신설하고 기간시설, 나노, 바이오, 의료, 수소에너지, 온실가스 등 그동안 구체적인 측정표준이 없던 곳에 기준을 마련해 안전 확보에 힘쓰고 있다. 우리 연구원은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정확하고 공정한 기준을 제공해 온 국민이 안전하고 불편함 없는 사회를 만들고, 제품의 신뢰성을 높이며, 인류가 직면한 글로벌 이슈를 해결해 나가는 데 앞장설 것이다.

2021년이 반 이상 남은 시점이지만 KRISS의 2021년 키워드는 'Ctrl+S(저장 단축키)'가 되길 희망한다.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지만, 바이오, 의료, 안전 분야에서 KRISS가 뛰어난 연구성과를 기록한 한해로 기록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성과들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가져다주길 기대한다.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hmpark@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