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중장기 상승 국면인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수출 품목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전체 수출액을 늘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물가 상승을 촉발해 세계 경기 악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가계 또한 물가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계 등은 수출과 내수 시장 등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자재 가격
19일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CRB 원자재 지수는 지난 10일 기준 216.043을 기록했다. 이보다 일주일 전인 3일 219.77 대비 1.7% 감소했지만, 작년 5월 11일 132.56 대비 63% 올랐다. 특히 이 지수가 216선을 넘어선 것은 2015년 5월 1일 216.92 이후 처음이다.
CRB 지수는 곡물, 원유(WTI), 천연가스 등 19개 주요 산업용 원재료 선물 가격 산술평균이다. 최근 급등은 주요 원재료 가격이 그만큼 올랐다는 의미인 셈이다. 실제 WTI 선물 가격만 좁혀 봐도 작년 4월 1일 배럴당 18.84달러로 최근 5년 최저치에서 이달 17일 장중 65.59달러까지 치솟았다. 주요 곡물 가운데 하나인 옥수수 선물 가격도 같은 기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부셸당 311.50센트에서 642.88센트로 배 이상 올랐다.
또 다른 원자재 가격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GSCI 지수도 마찬가지다. 이 지수는 작년 4월 23일 243.35로 최근 10년 간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이달 14일 515까지 올랐다. 상승폭은 111.7%에 이른다. 특히 515선은 2014년 11월 25일 516.62 이후 가장 높다.
경제계는 원자재 가격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세계적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올해 초 주요 원자재 가격이 향후 10년 간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자재 가격 슈퍼 사이클은 저점에서 정점을 찍고 저점으로 내려가는 초장기 가격순환주기다. 역사적으로는 1899년~1932년, 1933년~1961년, 1962년~1995년, 1996~2019년 등 총 네 차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회복 과정에서 기저효과와 그린뉴딜 등 새 산업화에 진전이 있었다”면서 “또 최근 수 년간 석유 및 광산업체 투자 감소 등에 따라 원자재 슈퍼 사이클 진입이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원자재 슈퍼 사이클 이유는?
최근 원자재 가격 급상승은 각국의 재정 확장 정책 결과로 풀이된다. 재정 확장 정책은 말 그대로 경제가 불황일 때 부양을 위해 시행하는 재정 정책이다. 금리 인하와 세금 인하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 사태가 발생하자 재정 확장 정책으로 대응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위해 '헬리콥터 머니'를 뿌렸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달러를 시중에 공급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1인당 1400달러를 지급하는 등 1조9000억달러 규모 경기부양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 512조3000억원에 달하는 본예산을 편성했고,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총 네 차례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추경예산은 총 67조원에 달한다. 이같이 세계적으로 늘어난 유동성은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해석이다.
원자재 수요가 공급을 앞선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 유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비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는 작년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둔화를 우려, 점진적 감산에 나섰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며 수요와 공급이 역전됐다. 여기에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심리 개선까지 겹쳤다.
◇경제 영향은?
경제계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 파급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원자재를 수입하기 때문에 더욱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통상 원자재 가격 상승은 중간재 등 상품가격을 끌어올린다. 예를 들어 각각 철광석과 석유를 수입하는 철강 및 석유 산업계는 철강재와 석유화학제품 가격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게 된다. 이는 식품 및 공업 제품에도 마찬가지 적용된다.
문제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 지수는 올해 4월 107.39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3%나 상승했다. 3년 8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소비자 물가 지수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평균화한 수치다. 이 지수가 급상승했다는 것은 그만큼 가계 부담이 커졌다는 얘기다.
국내 수출 기업들은 더욱 좌불안석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총 수출액은 늘겠지만, 향후 세계 경기가 악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세계 물가 상승→실질 소득 감소→세계 경기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과거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국내 물가 및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생산비 증가를 초래해 수출단가를 높이지만, 이로 인해 수출물량 감소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소기업 중심으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은 원자재 도입 물량 등을 장기계약하기 때문에 수급 등에 큰 문제가 없다. 지금처럼 수요가 뒷받침되면 제품 가격 인상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원자재 확보조차 어렵다. 낮은 협상력 때문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원자재 상승 사이클 국면에서는 (원자재) 생산국에서 자원민족주의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우리나라 등 수입 국가들은 가격 위험뿐 아니라 공급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원자재 가격 상승은 국가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수입 증가 등 상품수지 악화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전망했다. 이는 작년 753억달러 대비 14% 감소한 것이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 및 이전소득 수지 등으로 구성된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제조업 부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긍정적 경기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업 경제 활력을 제고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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