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차 車부품사, 반도체 위기에 인력난 이중고 "월급 대신 최저시급"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심화가 중소 자동차 부품 업계 위기로 번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와 동반 휴업 기간이 늘면서 최저시급을 지급하는 2·3차 자동차 부품 협력사가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 부품사들은 경영 상황 악화에 인력난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수출을 앞둔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수출을 앞둔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대기업에 고무 호스류 부품을 공급하는 2차 협력사 A사는 최저시급(시간당 8720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생산직 채용 공고를 냈다. 시간당 최저시급을 주고 만근 시 장려수당을 추가 지급하는 형식이다. 다른 다수 협력사도 최저임금제로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 중소 부품사들이 최저임금제를 내건 것은 회사 경영 상황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위기 이후 잔업이나 특근이 크게 줄면서 적자를 내는 중소 부품사는 기본급 외 추가 수당이나 복지 혜택 등을 지급할 여력이 적다.

입사 지원자들도 연봉제보다 최저임금제를 선호하는 추세다. 근무 외 수당과 같은 임금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 특성상 임금을 시간당 계산해 받는 최저임금제가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생산직조차 확보가 어려운 중소 부품사들이 더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사무직과 연구직이다. 대다수 협력사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 위치해 근무 환경이 열악한 데다 중견기업 이상과 비교하면 연봉도 높지 않은 편이어서 지원자 자체가 적다.

한 2차 협력사 관계자는 “연구직을 채용하기 어렵다 보니 원청이 요구하는 신규 부품 개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지원자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알고 있지만 뚜렷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부품사의 위기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완성차 생산 차질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어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달부터 주요 차종을 생산하는 공장 휴업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지엠과 쌍용차도 일부 차종 감산에 돌입했다.

완성차 생산 감소는 자금력이 열악한 중소 부품사에 더 큰 위기 요인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총 78개 자동차 부품사 중 84.6%(66개사)가 반도체 수급과 이에 따른 완성차 생산 차질로 경영 애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반도체 수급 차질 이후 부품 생산이 10~20% 감소한 곳은 전체의 33.3%에 달했고, 30% 이상 감소한 곳도 19.0%를 기록했다. 경영 상황에 대한 질문에는 10곳 중 7곳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KAIA는 보증기관과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특별금융지원 프로그램 마련, 법인세와 관세의 납기 연장이나 감면 등 부품사 유동성 타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건의한 상황이다.

KAIA 관계자는 “조업 단축이나 중단으로 상당수 부품사가 심각한 인건비 부담을 안고 있다”면서 “부품사들을 위한 고용안정 기금 확대와 조건 완화, 항공임 등 물류비 감면 지원, 탄력근로제 한시적 확대 적용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