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전기차 보급에 가장 열을 올린 지역은 단연 제주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015년에 제주도를 '카본 프리 아일랜드'(탄소 배출 없는 섬)로 선언하고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37만대 보급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해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제주도의 '카본 프리 아일랜드' 전략을 전 세계에 자랑했다.
제주도는 국내 그 어떤 지역보다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에 유리하고, 도서 지역 특성상 전기차 이용 환경에도 이점이 많다. 관광객이 많아 친환경 전기차를 경험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그러나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 비전이 흔들리고 있다. 제주도 중장기 종합계획(2020~2030)에 따르면 전기차 누적 보급 목표는 2020년 3만2428대, 2025년 16만7165대, 2030년 37만7217대다.
지금쯤이면 전기차 보급 대수가 4만대에 육박해야 하지만 실제 전기차 보급 누적량은 2만4000대 수준이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특히 올해 제주도가 목표로 한 전기차 보급 예산은 승용 전기차 1000대를 포함해 2525대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보급 목표(3600대)보다도 적고 올해 서울시 보급 대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이 전기차 보급 대수를 늘리는 것과 달리 제주도는 오히려 줄이고 있다. 제주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예산이 줄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전기차 보급 의지가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고 지자체장이 바뀐 것도 아니다.
2013년 302대에 불과하던 제주지역 전기차 등록 대수는 2017년 9258대, 2018년 1만5480대, 2019년 1만8128대 등 매년 증가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부터는 줄고 있다.
제주도가 2030년까지 37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수 있을까. 앞으로 8년 동안 35만대를 보급해야 가능한 숫자다.
제주도는 전기차 민간 보급 1호 지역이기도 하면서 이명박 정권 때부터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국책사업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전기차 보급 특화 지역이다. 최근 배터리 재활용·재사용센터를 비롯해 지난해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전기차 규제자율특구'로도 선정됐다. 각종 국책사업을 통해 전기차 분야의 가장 많은 세금을 쓰는 지역이다.
한때 원희룡 지사는 시내 번화가·관광지에 주차장이 포함된 무인 충전시설, 전기차 전용도로, 초소형 전기차 전용구역 운영 등을 비롯해 내연기관차에 탄소세와 같은 패널티 부과 방안까지 검토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우리나라 보급 정책은 오로지 물질 지원이 전부이기 때문에 유럽 등에서 시행하는 탄소세 부과나 전기차 의무판매제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건 원 지사가 처음이었다.
제주도는 지자체 최초로 100대 이상을 보유한 업체에만 허가해 온 렌터카 사업권을 전기차에 한해 60대 이상 보유 업체로 자격을 낮췄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 입주민회의 동의서 없이도 전기차 충전기 설치가 가능하도록 조례를 바꾸면서까지 전기차 보급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제주지역의 전기차 보급 분위기는 시들한 상황이다. 물론 민간 차원에서의 다양한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민간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시너지를 엮어 내기 위해서는 제주도 차원의 정책 지원이 지속해서 뒷받침돼야 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