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한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기업들도 경영시스템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도입하고 RE100을 선언하는 등 기후위기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벌거벗은 임금님' 교훈을 직시하며 어른들의 위선을 발가벗기는 어린아이 눈을 지닌 세계 청소년들은 각국 정부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며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19의 위험 속에 지구촌이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데도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 코로나19 백신의 복제품 생산이 금지되는 현실은 각국의 기후위기 대응 선언이 실제 립서비스에 그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예외적 조치로 백신 복제품 생산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양식을 근본부터 뒤흔들어야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는 더욱더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 생태계를 위한 것도 북극곰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회피할 수 없는 대응이다. 만약 기후위기로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지구는 또 다른 생명을 이어 갈 것이다. 공룡 전멸 이후 또 다른 생명체가 지구에서 살아났듯이 코로나19보다 더 중대한 인류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백신 특허권의 예외적 포기보다 훨씬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오늘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 절대 빈곤 문제로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야 하고, 미지의 우주에 대한 앎으로 대표되는 지적호기심은 채워져야 하며, 더 많은 다양한 문화를 직접 접하며 즐기려는 인간의 욕구도 채워져야 하기 때문에 극단의 청빈한 생활을 모든 인류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이렇듯 기후위기 재앙에 대응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산림자원과 산림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충돌, 재생에너지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시각의 충돌, 탄소포집기술을 개발하려는 관점과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등에는 다 저마다의 논리적 근거가 있기에 가치 충돌은 불가피하다.
어느 하나가 절대 선이고 어느 하나가 절대 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의 충돌, 갈등의 증폭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나의 신념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가는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 징검다리는 관점이 다른 두 시각이 상대방의 빈 곳을 채울 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문제의 본질 파악과 해결에 도움이 되기보다 문제를 회피하고 방관하게 시키는 발언이 넘쳐난다. 징검다리를 놓기보다 외려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람들에게 언론이 주목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고 기후위기 해결과 풍요롭고 다양한 삶의 유지를 위한 삶의 균형을 잡아 가는 해법은 결국 오늘을 사는 시민에게 있다.
고립되지 않고 외면하지 않으며 더 나은 해답을 찾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이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때 세상은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지난 5월 말 출범한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책 컨트롤타워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정책 컨트롤타워만이 아니라 협업과 소통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하길 희망한다.
하나의 시각으로 다른 시각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해답을 위해 서로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탄소중립위원회가 운영,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의 든든한 길동무로 세계 시민들과 함께하길 기대한다.
윤기돈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상임이사 kdyoon@ke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