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기업 경영진들은 자사 기업의 기술성과 혁신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투자 시장이 매년 특정 산업군으로 유행을 많이 타는데다 기술 이해도나 산업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투자시장서 제대로된 혁신기술 가치를 인정받기 힘든 구조라는 지적이다. 또 절반이상의 벤처기업가들이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 수준이 글로벌 선전국에 비해 낮다고 평가했다. 규제개선의 속도가 새로운 신산업 형성 및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생태계를 구축하는 핵심요소인 '회수(엑시트)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성장 벤처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 요구 목소리 높아
전자신문과 벤처기업협회가 지난달 24일부터 6월4일까지 157개 벤처기업의 임원급이상 경영진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개선점으로 '기술벤처에 대한 기업 가치'가 36.9%로 가장 많이 나왔다. 이는 최근까지 코로나19로 비대면, 바이오, 플랫폼 등의 산업에 경쟁적으로 투자가 쏠리면서 제조 등의 다른 산업 영업의 벤처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투자유치 기회가 적어졌고, 그러면서 기업가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학내 창업에 나선 한 대학교수는 “같은 기술인데 해외에 문의하면 두배 이상의 가치를 준다”며 “기술벤처 분야의 경우 국내에서 단순히 동종업계 유사한 특허 기술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수준이라 기술혁신성을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구조자체가 안돼 있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29%는 초창기 벤처기업에 쏠린 투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설립 7년차 이상의 성장 벤처기업으로 자금 공급을 확대해 신속한 스케일업이 가능해지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정부주도 벤처투자 시장 형성(17.2%) △민간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12.1%) 등이 뒤를 이었다.
한 벤처기업 CEO는 “중견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투자는 기업당 고용창출효과도 훨씬 크게 기대할 수 있다”며 “벤처기업의 스케일업과 글로벌화를 위한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벤처분야 가장 심각한 규제로는 주52시간, 노동유연성 등 노동 및 근로 규제가 35.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당장 7월부터 50인미만 사업장에 주52시간제가 확대 시행됨에 따라 벤처기업 현장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추가 기술개발 인력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52시간 근무제가 되면 당장 제품·기술 개발에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이같은 획일화된 노동 규제는 단기간 집중적으로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벤처기업의 성공 방정식과는 멀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외에 각종 인허가 규제(19.6%), 법인세 경감, 종부세 부담완화 등 세제 관련 규제(13.2%), 금융자본시장 관련 규제(10%), 언텍트 및 플랫폼 등 융복합 신산업 규제(8.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기타 의견으로는 △공공조달 부분에 신규품목승인 절차간소화 △제품 승인 및 인허가 개선 △지나치게 엄격하고 데이터 활용을 어렵게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및 데이터 관련 규제 △7년 이상 업력의 벤처기업에 대한 추가 지원 등이 나왔다.
◇벤처기업 47%, “선진국대비 벤처 생태계 수준 미흡”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 수준에 대해선 정부의 벤처시장 활성화 의지와 달리 일선의 경영진들에게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응답자의 47.2%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벤처생태계를 부정적으로 봤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 수준이 높다고 평가한 것은 9.6% 수준에 그쳤다. 이는 투자 규모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고 지속 성장하기 위한 발판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 자금 외 다양한 민간 자본의 유입을 활성화하고, 특히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 회수 시장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벤처기업가 54.8%는 우수인력 유입을 위해 '채용 인력의 인건비 일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높아진 개발자 몸값에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인력양성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더 필요로했다. 이어 '대학, 연구소 등을 통한 조인트 벤처형식의 고급 기술 인력 지원(15.9%)', '분야별 전문 인력 풀 구축 및 리쿠르팅 지원(14.0%)' '스톡옵션 등 성과 보상체계 마련(5.7%) 등의 순으로 요구했다. 이 외에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우수 인력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그리고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제고 개선 등을 기타의견으로 내놓았다.
한편 설문조사 결과 벤처기업 10곳 중 6곳은 코로나19 이후 실적이 부진해졌다고 답했다. 이는 코로나19가 최초 발현한 2019년 12월말 이전을 기준으로 비교한 것이다. 보통이거나 양호하다고 답한 기업은 각각 29.5%로 나타났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