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빚에 허덕이며 피자 배달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가상세계에선 뛰어난 해커이자 검객이다. 가상세계에 퍼지는 신종 마약이 현실세계에서 접속한 이용자의 뇌에도 침투해서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배후세력과 대결한다.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 크래시' 줄거리이고, 가상세계 이름은 '메타버스'(Metaverse)이다. 메타버스는 컴퓨팅기술을 통해 3차원(3D)으로 구현한 상상의 공간이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소설은 현실로 다가왔다. 인터넷 이후는 메타버스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실감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비대면사회가 메타버스의 존재감을 알렸다. 머리에 장착해서 입체화면을 표시하고 로봇 등을 제어하는 장치, 가상의 3D 입체공간을 만드는 3D매핑·모델링, 시청각 인터페이스 등을 통해 현실과 가상세계가 연결·결합·융합되고 있다. 정부는 가상융합경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경제사회 전반의 활용과 기술 고도화, 핵심 인프라 확충, 실감형 콘텐츠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메타버스 유형을 보자. 첫째 현실 위에 가상세계를 올려놓는 VR이다. 게임 '포켓몬고'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실제 공간을 돌아다니는 가상의 동물을 잡는 게임이다. 이케아는 가구를 집에 가상으로 배치해 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둘째 현실의 물리적 환경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재현하는 서비스다. 구글어스는 위성에서 본 지구 이미지를 3D로 만들어 공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현실의 정치·경제·사회를 가상공간에 옮겨 놓거나 새롭게 창출한 가상세계다. 세컨드 라이프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교육기관 등을 가상공간에 만들고 현실과 같은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가상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게임 포트나이트는 가상공간에서 DJ 마시멜로, 래퍼 트래비스 스콧 등 실제 음악가와 공동 콘서트나 공연투어를 했다. 게임 '동물의 숲'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상의 대선캠프를 마련, 게임 이용자에게 선거공약 홍보와 투표 독려를 했다.
메타버스의 성공 요건을 보자. 기술 발전과 산업화가 우선이고, 정책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유의할 사항만 보면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의 정치·경제·산업·사회를 보완해야 하고, 도피처가 되면 안 된다. 현실세계의 불법·탈법을 지원하는 용도로 악용해서도 안 되고, 현실세계의 인간 가치를 부정하는 용도로 쓰여서도 안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메타버스의 법적 쟁점을 보자. 메타버스 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 거래에 어떤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콘텐츠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에게 채무를 불이행하거나 성희롱, 폭행, 명예훼손 등 불법 행위를 했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아바타에 인격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 내에서 사기, 허위과장 광고도 문제될 수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시선, 뇌파, 생체신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이 늘어난다면 개인정보보호법도 검토해야 한다. 아바타를 차별 없이 공정·평등하게 대하지 않을 경우 법적 효력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 메타버스에서의 아이템 제작 판매, 부동산 등 거래나 기업 경영에 대해 상법을 어떻게 준수해야 하는지도 문제된다.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노동을 어떻게 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 가상공간에서 발생한 수입이나 거래에 대해 현실세계와 다른 조세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모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메타버스든 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현실세계이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다. 메타버스가 현실세계와 분리돼 존재할 수 없고, 메타버스가 현실세계의 성공에 봉사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