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주52시간 확대 시행 코 앞인데 중기·벤처는 사람 못구해 난색 “계도기간 달라"

[이슈분석] 주52시간 확대 시행 코 앞인데 중기·벤처는 사람 못구해 난색 “계도기간 달라"

“경기 회복이 예상된다고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 입국도 끊겨 정작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공장을 돌리고 싶어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주문량 자체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백신 접종 속도가 빨라지고 국내 거리두기 완화 조치 등으로 수출과 내수 모두 회복세가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영세 중소기업들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 당장 다음달부터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자에까지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것도 큰 고민이다.

중소 제조업체는 하반기 경기 회복을 염두에 두고 공장 가동률을 높여야 하지만 정작 채용할 만한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 신규 입국이 제한되고 있는데다 내국인 근로자들은 제조업을 기피업종으로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 기대에도 사람 없어 공장 가동 못해

중소제조업 평균 공장 가동률은 코로나19 이후 크게 떨어졌다. 지난 4월 기준 중소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1.1%로 2019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에는 66.2%까지 떨어졌다.

[이슈분석] 주52시간 확대 시행 코 앞인데 중기·벤처는 사람 못구해 난색 “계도기간 달라"

대다수가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체에 해당하는 소기업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중소기업 평균가동률이 70%를 넘기던 지난 3월에도 소기업의 평균가동률은 67.1%에 불과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제조 소기업 평균가동률은 63.7%에 불과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7월부터는 경기 회복을 위한 경쟁이 이뤄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제도가 오히려 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라면서 “경기 회복 기대와는 달리 공장 가동률이 사실상 크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반기 경기 회복기에 접어들더라도 정작 근로자 50인 미만의 업체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 52시간제 직격탄 맞은 제조 소기업

그간 중소기업계가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 시행과 관련해 계도기간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해 온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근로자마저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영세 기업들은 인력난으로 사람을 뽑지 못해 사업의 운영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업종별로 처한 환경도 저마다 다르다. 뿌리기업은 설비를 24시간 내내 가동해야한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교대제 개편을 위한 추가 채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

조선업계는 대표 수주산업으로 국내법을 고려하지 않는 해외 선주 주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건설업은 야외 작업이 빈번해 인위적인 근로시간 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뿌리산업 분야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다수 업체가 50인 미만 소기업으로 외국인 근로자와 일부 고령화 된 숙련 인력에 의존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추가 근로시간 확보를 위해서 인력 충원을 해야 하지만 물량이 계속해서 많은 것이 아니기에 특정 시기에 갑자기 주문이 몰릴 때를 대비해서 추가 인력을 채용하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고 말했다.

석회석 가공업체 관계자는 “3조 3교대로 근무해도,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1주에 평균 65시간 정도 근로시간이 발생한다”면서 “이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주 52시간제까지 도입되면 추가 인력 구하기가 사실상 어려워 공장 가동에 큰 차질 발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83.9%냐 7.7%냐...주 52시간제 시각차 뚜렷

중소기업계는 앞서 정부가 대기업에 9개월, 50인 이상 기업에 1년 계도기간이 부여한 것처럼 50인 미만 기업에도 그 이상 준비기간을 부여해줄 것을 지속 요청해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 다음달 1일부터 계도기간 없이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계는 계도기간이 아니더라도 영세 제조업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보완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당장 정부와 중소기업계의 인식 차이가 워낙 큰 까닭이다.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해 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부여된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중기중앙회에서는 응답기업 83.9%가 주52시간제를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 반면 고용부에서는 단 7.7%만이 주52시간제를 지키지 못할 것으로 봤다. 같은 조사결과를 두고 다른 해석이 이뤄진 셈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 확대 등 근로시간제도 유연화를 위한 요구도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업무량이 급증하는 경우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기존 90일에서 180일로 연장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도를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주 52시간제도 확대 시행에 내년 최저임금 인상과 중대재해처벌법, 공휴일 대체 휴일 확대까지 중소기업에게 부담이 되는 제도 변화가 너무 많다”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만이라도 계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