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은 현대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석유·화학은 물론이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뿌리산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된다. 때문에 안전하게 사용하면 우리 생활과 산업에 이로움을 주지만 잘못 다루면 큰 화를 가져다 준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12년 발생한 구미 불산사고다. 당시 구미 불산저장탱크에서 폭발이 일어나 5명이 유출된 유독가스로 숨지고 주민들이 대거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지중해 국가 레바논에선 질산염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폭발이 발생해 4000여명이 부상을 당했고 100여명이 숨졌다. 자칫 부실한 관리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본보기인 셈이다.
국내에선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화학안전사고 476건이 발생했다. 연평균 약 79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가운데 151건(32%)에서 인명피해 344명이 발생했다. 사망자가 25명에 이르고 부상자도 319명에 달했다.
올해를 포함해 최근 3년간 1분기 사고건수를 분석하면 2019년 7건 지난해 16건, 올해 1분기 18건, 사상자 21명으로 되래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파주 LG디스플레이에서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TMAH) 유출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3월에도 논산 타소마테크놀러지에서 이소프로필에테르가 폭발하면서 화재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죽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시설과 장소별로는 운반차량으로 인한 사고는 줄었지만 사업장에서 14건이 발생하면서 사업장 사고는 12%포인트(P) 늘었다.
사고유형은 시설관리 미흡과 작업기준 및 밸브 안전확인 미준수 등 안전관리 미흡으로 인한 사고가 대부분이었다. 즉 시설관리를 제대로 하고 작업기준만 준수해도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밸프스'·중기지원으로 화학사고 예방
정부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을 안전하게 관리해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밸프스' 캠페인이다. 화학물질 저장과 운반 때 사용하는 밸브, 이음부인 플랜지, 작동하는 스위치만 잘 점검해도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환경부는 올해 이같은 캠페인 계획을 밝히고 실국장은 물론이고 차관, 환경청장, 화학물질안전원장이 이 참여하는 17차례 현장행보를 이어갔다. 또 1만2000여개소에 포스터와 홍보물을 배포하고 사업장 간담회·사고예방 컨설팅 등을 38회 진행했다.
또 사업장 내 밸프스 안전관리 실천모습과 작업전 안전관리 실천다짐회의 등을 담은 짧은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에 게재하고 다짐을 이어가는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결과 100개가 넘는 실천 영상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화학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점검과 검사도 병행했다. 지방·유역 환경청을 중심으로 295개소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또 한국환경공단 등 전문기관이 856건의 정기검사를 진행하며 밸프스 안전성을 집중 점검하고 안전관리 계도·홍보했다.
최근 사업장에서 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대상 안전교육도 실시한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언어 장벽 때문에 유해·위험성에 대한 정보습득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국가별 모국어 자료를 활용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는 라오스·파키스탄·동티모르·키르기스스탄 등 근로자를 대상으로 4개국 외국인 교육교재와 동영상을 제작, 안전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인력과 자금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도 늘리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매년 약 1500여건 중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문기관을 통해 취급시설기준, 화학사고 예방관리계획서 작성, 취급자 교육에 대한 무료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화학사고 발생 땐 신속 대응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물질에 맞게 대응이 이뤄져야 사고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
이에 맞춰 환경부는 지자체·소방 등 사고대응기관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데이터베이스(DB)인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상시 접속할 수 있게 했다.
시스템 내에는 사업장 허가현황과 예방관리계획서 등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사고물질에 따라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또 불화수소(HF), 염화수소(HCL),암모니아(NH₃), 황화수소(H₂S), 염소(Cl₂) 등 증기압, 끓는점, 반응생성물, 물반응성, 독성 등을 고려해 주민대피를 결정할 수 있도록 대응정보도 함께 제공된다.
사고가 확산될 경우 심각한 위해가 있는 독성물질 누출사고의 경우 '주민알림→상황관찰→주민대피 결정지원' 순으로 지원절차를 규정했다.
화재·폭발사고는 초기에 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장인 소방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화학물질안전원은 화재확산, 연쇄폭발 위험성 등을 고려해 주민대피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화학물질안전원장이 물질정보·예상피해범위·방제정보 등을 제공하면 시장·군수·구청장은 현장상황을 고려해 주민대피명령을 문자 등을 포함한 수단으로 알리게 된다.
또 화학사고 현장수습조정관은 원인물질을 탐지·측정·분석해 피해최소화와 복구 등 사고대응 지원을 맡게 된다. 사고규모에 따라 지방환경청장, 지방청 화학안전관리단장, 합동방재센터 환경팀장 등이 참여한다. 중대사고로 번질경우 위기경보를 발령해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위기관리기구를 통해 상황 관리 및 수습·복구를 추진하게 된다. 사고수습후에는 환경청 소속 공무원을 단장으로 화학사고 영향조사단을 구성해 사고원인 조사와 사람·환경 영향 조사를 추진한다.
이영석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은 “화학물질·제품에 대한 국민과 산업계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안전의식 고취 예방과 화학안전정책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 사고를 미리 막고, 발생할 경우 확산 방지에 주력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