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손실 책임을 두고 공방을 거듭해 온 정보기술(IT) 서비스·솔루션 기업이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벌어졌다. 공동이행방식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례로, 제도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KCC정보통신이 최근 서울남부지법에 '정산금 지급 청구'에 대한 원안 소송을 제기했다. 협력사로 함께 사업한 에스넷ICT와 에스큐브아이가 사업 잔금 가압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며 제소명령을 요청한 데 따른 조치다.
KCC정보통신과 에스넷ICT, 에스큐브아이, 시스원은 한국예탁결제원 전산센터 재구축 사업에 대한 손실 책임을 놓고 사업 준공 시점인 지난 3월부터 공방을 벌여 왔다.
공동이행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한 만큼 손실도 컨소시엄 지분만큼 분담해야 한다는 게 KCC정보통신의 입장이다. 컨소시엄 참여사 3곳은 업무를 각자 분담했고, 자사 책임에 따른 손실은 없는데 주사업자 잘못으로 인한 책임을 전체 컨소시엄에 지우려 한다고 맞섰다.
KCC정보통신은 프로젝트 과정에서 손실을 예고하고 업체들과 협의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여사들은 중간 협의는 없었으며, 사업 마무리 시점에서 손실에 대한 일방 통보만 있었다고 반박했다.
KCC정보통신은 잔금 105억원 가운데 3개 업체의 손실 분담금에 해당하는 34억원에 가압류를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승인했다. 시스원은 KCC정보통신과 합의했지만 에스넷ICT 및 에스큐브아이는 각각 15억원, 8억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에스넷ICT, 에스큐브아이는 법원으로부터 받은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양측 간 협의가 한 차례 있었지만 의견 차이가 커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동이행방식에 따른 분쟁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서는 중소기업 A사가 또 다른 중소기업 B사, 스타트업과 컨소시엄으로 공공사업에 참여했다가 스타트업이 파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A사는 스타트업 파산으로 인한 일정 지연, 비용 등에서 책임을 지게 됐다. 스타트업 상대로 소송도 고려해 봤지만 기간과 비용 면에서 소송을 진행할 엄두가 나지 못했다. 이 역시 공동이행방식으로 말미암은 폐해 사례다.
사업을 함께 수행하고 책임도 연대하는 공동이행방식은 업체 간 분쟁의 주요인으로 꼽히면서 제도 개선이 끊임없이 요구됐다. 그러나 발주처는 대부분 관리 편의성 때문에 분담이행이 아닌 공동이행방식을 택하는 실정이다.
계약예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난해부터 업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올해도 한국SW산업협회로부터 두 차례 공동이행방식에 대한 이슈 사항을 청취했다. 발주처에 공동이행·분담이행 등 특정 방식을 의무화하는 게 적절한지 등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공동이행방식을 고집하는 발주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SW나 시스템통합(SI) 사업은 생선 가시 바르듯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대형 IT서비스기업 관계자는 “분담이행방식을 활성화하려면 업계에서 업무 분담을 명확하게 하는 방안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면서 “발주처가 분담이행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