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다음은 '게임이용장애'다

[기자수첩]다음은 '게임이용장애'다

“나도 학창시절에 게임을 하면서 학습했다. 게임이 도움 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같은 당 허은아 의원이 주최한 셧다운제 폐지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과거 게임을 규제하고 중독 현상과 엮으려고 앞장선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국민의힘 전신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다. 게임을 대하는 시선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때가 늦은 아쉬움은 있다. 정말로 관심이 있었다면 당 차원에서 지난 2019년 단계적 폐지 발표 때나 올해 초 2년 단위의 재고시에 앞서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 지금의 행보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판단이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게임업계의 반응은 좋다. 게임을 '악'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하나 걷어 낼 기회이기 때문이다.

셧다운제는 '게임=나쁜 것'이란 명제가 사회에 통용된 사례다. 공부를 못해도, 잠을 못 자도, 대학에 못 가도,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해도 게임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폭력 사건도 게임이 책임져야 했다. 국가에서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게임 이용을 제한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게임을 두고 오랜만에 우호 여론이 형성됐다. 이젠 이 힘을 셧다운제 폐지를 넘어 '게임이용장애'로 끌고 가야 한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관련 연구 결과가 곧 나온다. 결과물을 바탕으로 민관협의체가 국내 도입을 논의한다.

셧다운제와 게임이용장애는 닮았다. 학부모와 기독교 단체가 찬성한다. 정작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게임업계가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것도 같다.

업계는 과거 셧다운제, 게임중독법, 게임이용장애 논의 등 주요 국면 때마다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소프트), 방준혁(넷마블) 등 게임업계 거물급 인사들이 직접 나서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적이 없다. 최근 셧다운제 폐지 여론도 업계가 아니라 이용자가 만들었다.

이제 업계가 정치권과 학계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할 때다. 기회가 왔을 때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실기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