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논쟁이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4·7 재·보궐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이 실마리로 작용했다. 통일부 존폐론까지 거론된다. 일부의 시선이지만 이른바 존재감 없는 부처 무용론이다. 정치권에서는 급기야 '작은정부 vs 큰정부' 논란으로 이어졌다. 차기 정부의 거버넌스 문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여가부 폐지 문제는 우선 이념적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성적순으로 정부 부처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청년실업이 늘고 일자리 현황판이 사라졌다고 해서 고용노동부를 폐지할 순 없지 않은가. 일기예보가 어긋났다고 기상청을 없앨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정부 부처 개편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정국에서 질병관리청이 생겨난 것 이외에 기억에 남는 부처의 신설은 없었다. 이 때문에 현행 정부 조직은 사실상 10년 동안 유지된 셈이다.
이제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젠더 갈등보다는 현 시점에서 어느 부처가 어떤 기능을 갖춰야 하는지 새로 설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난치병·고질병을 치료할 수술대가 필요하다. '지금 이대로'와 같은 관성적인 접근으로는 혁신과 발전은 요원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삶에 편익을 가져다 주는지, 국가가 나아갈 미래와 비전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정부 조직 개편 청사진이 마련돼야 한다. 예컨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풀기 위한 조직, 미래의 주역인 2030세대를 위한 부처 신설도 고려할 만하다. 국가부채 1400조원이라는 폭탄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해결할 조직도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는 통제불가능한 사회로 빠져들 수 있다. 덩치만 큰 나라가 될 수 있다.
혁신은 덜어 낼 줄 아는 과감함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리모델링을 넘어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그려야 한다. 땜질식 부분 처방보다는 근본 혁신이 필요하다. 사회구조적 부조리와 병폐를 청산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 현실은 어떤가. 인기영합 정책은 넘쳐나고,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 정책은 애써 외면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은 차기 정부, 후임 장관의 몫이다. 나랏빚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없다. 2030세대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짐이다.
정치는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다. 최소한 앞으로 10년 후 대한민국 자화상을 그리고,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진용을 갖춰야 한다. 행정은 현재에 대응하고, 정치는 미래를 위한 행위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난제를 외면하지 말고 돌파할 수 있는 시스템과 체제를 갖춰야 한다.
방만한 조직은 줄이고,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부처와 공기관은 기능 조정이 필요하다. 회의 한 번 열지 않는 수많은 위원회, 정부 독임 부처와 역할이 중복되는 각종 특별위원회는 옥상옥이다. 작아도 기능적으로 강한 부처와 기관이 필요하다. 현행 시스템은 덩치는 크지만 역할과 기능은 없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념과 인물 대결보다는 치열한 진영 대결이 예상된다. '정권재창출 vs 정권교체' 세력 간 접전이 예상된다. 누가 차기 한국을 이끄는 리더가 되더라도 관성을 버리고 키워드와 가치 중심으로 미래형 정부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리셋 버튼이 필요하다. 내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주요 모멘텀이 돼야 한다. 유력 주자들이 흰색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덩치가 아니라 정부 조직의 강한 근육이다.
김원석 정치정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