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2년이 지난 지금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보도가 자주 눈에 띈다. 소부장 수출규제 품목이었던 불화수소의 경우 대일수입은 2년 새 86% 줄어든 것으로 발표됐다. 수출규제로 인해 시작된 위기가 오히려 한국 소부장 기술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런 소부장 성과에도 무역역조 구도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5% 늘었다는 대일 무역적자는 품목 대체뿐만 아니라 축적된 기술을 확산시키고, 취약기술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개발이 필요한 품목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성능만을 평가하기보다는 그 성능을 구현하기에 필요한 근본 요소를 찾아내는 과정도 중요하다. 소부장 제품은 한 가지 요소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성능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또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은 모든 성능지표 인자들을 과도하게 상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성능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을 고려해 인자별로 어느 정도 수준의 성능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품목 국산화를 위해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하지 않는 것도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스 소재는 불순물을 기존 수준 이하로 과도하게 개선하는 연구에 자원을 투입해 가격 경쟁력을 낮추고 시장진입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장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불순물 농도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 중 어느 금속원소나 유기물이 공정에 미치는 영향이 큰지 이를 측정·검증해 데이터베이스(DB)를 축적하고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가지 소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관련 데이터를 측정하는데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 측정기술을 기반으로 한 '테스트 플랫폼'을 구축하고 활용하면 이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테스트 플랫폼은 시험 공간을 조성한다는 뜻인 테스트베드와 비슷한 의미지만 좀 더 포괄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테스트베드에서 다소 소외당할 수 있는 기초성능평가 기능, 양산에 적용 가능한지를 평가하는 적용성 평가 기능도 포함한 운용체계를 가진 개념이다. 기존 테스트베드 인프라와 연계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양산제품을 레벨 5라고 정의하면 테스트플랫폼을 활용해 레벨1 단계(기술만 보유)부터 레벨4 단계(수요기업에 적용 가능한 수준)까지 평가가 진행되며 레벨별 평가항목에 대한 취약성능을 포함한 제품수준도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테스트 플랫폼을 활용하면 제품 수준과 더불어 성능향상 전략과 수요기업의 요구사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수요연계형 토털 솔루션 지원시스템(아이템 발굴-시험평가-선택 및 집중 R&D-수요기업과 공동인증)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성능평가의 수준을 수요기업 요구수준까지 상향하기 위해선 수요기업이 보유한 측정장비 수준의 측정기술 개발과 생산되는 데이터의 신뢰도가 보장돼야 한다. 단순히 데이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성능 개선방안을 동시에 제공돼야 하므로 전문가 집단의 지원도 체계화해야 한다.
다행히도 정부는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K-반도체 전략을 지난 5월에 발표했으며 전략안에 인프라 지원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인프라 지원 전략을 구체화하고 더욱 체계적인 테스트플랫폼을 설계한다면 소부장 기술독립은 먼 미래가 아닌 눈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상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첨단측정장비연구소장 swkang@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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