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39〉평평한 운동장을 만들라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정치·경제·문화 전 분야에 걸쳐 '공정' 또는 '공평'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이 아닌 미디어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른바 '레벨 플레잉 필드'(level playing fields), 즉 공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서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며 미디어 산업에 속한 모든 플레이어가 외치고 있다.

이 표현을 자주 대하면서 지난 2007년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 제정을 앞두고 케이블TV가 인터넷(IP)TV와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게 생각난다. 당시는 케이블TV만 외치던 구호였지만 이제는 미디어 산업이라는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의 구호가 됐다.

경기를 심판하는 각국의 규제기관도 선수 못지않게 경기장이 평평해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존 선발주자로 누리던 기득권이 이제는 경기의 장애물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에 경기장의 평평함을 위해 본 경기보다 치열한 경기를 벌이기도 한다.

공평한 경기장을 얘기할 때는 경기자 입장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사업자' (old guy)와 '새로운 사업자'(new comer), '국내 사업자'(domestic)와 '해외 사업자'(global),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네트워크를 소유하면서 경기하는 통신사업자(ISP)와 자사 네트워크 없이 경기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쉽게 이분법적으로 나눴지만 실상은 더 복잡한 조합이 내재돼 있어 풀기 어려운 함수가 됐다.

세계 각국은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인한 거대 글로벌 테크기업의 공습 속에서 그들의 독점 파워나 세금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기 위한 규제와 법체계 재정비에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자국 문화산업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에 나섰다. 개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해 전달되는 영상을 규제하는 법안이 제안됐다.

테크기업도 전통 방송사업자와 같은 규제 아래 놓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나 틱톡 같은 회사도 캐나다 콘텐츠 진흥에 힘써야 하고, 재정 지원도 해야 한다.

법안의 핵심은 라디오와 TV사업자에 지역 콘텐츠 제작 및 보급을 수십년 동안 요구한 것처럼 콘텐츠로 인한 미국 문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의 방송법 전면 개정에 힘입어 캐나다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거대 테크 플랫폼 기업에 적어도 30% 콘텐츠를 EU 안에서 제작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도 지역 콘텐츠를 우선하도록 했다.

캐나다 정부는 소셜미디어플랫폼 회사에 캐나다 뉴스를 위한 재정 지원과 온라인 증오 표현에 대한 엄중 단속도 요구했다. 나아가 내년부터 매출 3%를 디지털 서비스 세금으로 부과하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디지털부 장관은 “방송은 기술에 의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지만 시청자를 보호하고 자국의 전통 채널 경쟁력을 위한 현재 규제는 아날로그 시대 것이다”라면서 “방송사업자와 VoD 서비스 간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아마존프라임 같은 OTT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예고했다. 그들도 BBC 등 전통 유선 방송과 유사한 규제를 부과해야 하는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얽히고 설킨 이해당사자 관계로 해법 찾기가 어려운 함수지만 다른 나라 사례처럼 얽힌 실타래에서 실을 한 가닥씩 푸는 노력을 할 때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는 수평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형편없이 얽힌 실타래가 어느 순간 확 풀리듯 결국 미디어 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 해결에서도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의 이해와 노력이 변수가 아닌 절대 상수가 돼야 할 것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