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1일 김경수 경남지사 징역형을 확정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당선을 위해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다. '킹크랩'은 일명 '드루킹' 김동원씨가 만든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여권 유력 주자이자 친문 핵심으로 불리는 김 지사가 최종 구속되면서 내년도 대선 정국은 물론 현 정부 국정운영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재구속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 지사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지사 측은 김 지사가 킹크랩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한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모 공동정범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오해, 이유모순, 판단누락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특검 측이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 제안이 지방선거 댓글 작업 약속에 대한 대가라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지사는 판결 선고 직후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며 결백 입장을 고수했다.
허익범 특검은 “이번 판결은 정치인이 사조직을 이용해 인터넷 여론 조작방식으로 선거운동에 관여한 행위에 대한 단죄”라며 “앞으로 선거를 치르는 분들이 공정한 선거를 치르라는 경종”이라고 평가했다.
김 지사는 징역형이 확정됨에 따라 재수감된다. 구속 행정집행 과정을 거쳐 1~2일 내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지사직도 수행할 수 없다. 형 집행 기간을 포함해 약 7년간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다.
◇대선판 후폭풍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친문 적자로 평가받는 김 지사 유죄가 결정되면서 향후 대선 정국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온라인 민심이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김 지사 유죄 확정은 여야 선거 캠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지사가 드루킹 김씨와 함께 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매크로를 이용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향후 대선 정국에서 파급력이 커질 것을 경계했다. 이소영 민주당 대변인은 “아쉬움이 크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여권 유력주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 측은 “진실은 끝내 찾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2017년 대선은 누가 봐도 문재인 후보의 승리가 예견됐던 선거다. 캠프가 불법적 방식을 동원할 이유도, 의지도 전혀 없었던 선거”라고 주장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드루킹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유죄를 판단한 것은 증거우선주의 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여권 1~2위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에게는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도 있다. 김경수 지사가 친문 결집 행보를 보이면서 비주류인 이 지사를 압박하는 카드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이 전 대표에게는 친문 결집세가 자신에게 모일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당 유력주자들에게는 경선 과정에서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면서 “다만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소속 후보들은 2012년 대선 때 벌어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유사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해 우선 반성하고 사과하는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지적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야권 유력주자들은 '사필귀정'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 댓글 조작 혐의 유죄에 대해 문 대통령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여론조작을 통해 민주주의를 짓밟은 중대하고도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오늘날 여론조작은 자유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다. 이번 판결로 우리 정치에서 여론조작이 더는 발붙이지 못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가세했다. 윤 전 총장은 “현 정권의 근본적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사법부 판결로 확인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다양한 방법의 여론조작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께서 민의를 왜곡하는 시도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청와대, “입장없다”
청와대는 대법원의 김 지사 유죄 판결에 대해 침묵했다. “입장이 없다”는 짧은 말만 되풀이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이나 주요 참모진의 관련 발언이 향후 대선 정국은 물론, 현 정부가 추진하는 코로나19 방역 및 민생 안정까지 영향이 끼칠까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낼 입장이 없다. 노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자택 압수수색을 당한 뒤 이날에는 민정비서관실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는 등 잇따른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