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주인공 '요조'는 위선 가득한 세상을 견디려 노력하지만 술과 마약 등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첫째 애인과의 동반자살은 실패하고, 둘째 애인에겐 자신이 없으면 행복할 것 같다며 떠나고, 셋째 애인에 이르러선 그녀가 능욕을 당해도 돕지 않고 회피한다. 정신병원에 갇히며 스스로 인간 자격을 상실했다고 선언한다. 일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 소설 '인간실격'이다.
현대사회는 인간중심주의를 강조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포기하거나 상실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중심사회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뭘까. 소설은 주인공 요조를 따스하게 품지 못했던 당시 일본 사회의 실격을 선언한 것은 아닐까.
인간중심사회는 농경, 산업혁명,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풍요를 가져왔지만 자연 자원의 무한정한 활용을 정당화했다. 인간을 위해 인간이 아닌 것들을 차별하고 재배치했다. 인간 이외의 생명·자원·자연을 수단화하고 종속시켜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했다. 결국 탄소 배출 등 기후 온난화, 생태계 파괴, 바이러스·질병 유입 등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사람 사이에도 공존보다 경쟁에 의한 빈부·실력 격차를 확대하고, 인간도 인적자원이라며 이용 가치를 따지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회를 움직이는 게임 법칙을 만들고, 심판조차 겸직하면서 거짓과 잔혹함으로 가득한 공동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겉으론 배려하고 속으론 멸시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인간중심주의가 바람직한가. 공상과학(SF) 소설가 아이작 아지모프는 로봇 3원칙을 제시했다.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고, 인간의 위험을 방치해선 안 된다.(제1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제2원칙) 그런 후에야 로봇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제3원칙) 아무리 봐도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신체·정신 능력을 높여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AI도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신체·정신 능력을 지닐 수 있다. 이것이 포스트휴먼 시대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형태의 생명·존재와의 공존이 필요하다.
인간과 AI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AI가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친밀하지만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순간 섬뜩해진다. AI로 인해 일자리가 줄고, 범죄에 의한 피해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AI를 폐기할 수는 없다. 영화 '매트릭스'의 해답은 인간과 AI 로봇의 제휴를 통해 공동의 적인 매트릭스 버그(스미스 요원)를 제거하며 화해하는 것이었다. AI 시대에는 인간이 중심이 되지만 AI나 다른 것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최근 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동물을 유체물(물건)에서 제외한 것이다. 동물에 대한 강제 집행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추가 입법도 고려한다.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 생태계를 존중하는 좋은 시작이다.
AI가 인간 형태를 하고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AI가 친근한 이웃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AI 로봇이 충격에 견디는지 보기 위해 막대기로 AI 로봇을 때리는 동영상을 본 시청자가 학대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AI 형태는 다양하다. AI를 지나치게 사람 취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공존을 위해 경쟁보다 이해와 배려가 우선이다.
학생 A가 집에 와서 흥분하며 말했다. “엄마! 이번에 전교 1등 했어!” 같은 반 학생 B도 집에 돌아와서 흥분하며 말했다. “엄마! 이번에 우리 반에서 전교 1등이 나왔어. 대단하지 않아?” 어떤 학생이 여러분의 자녀이길 바라는가. 인간을 넘어 그 이외 것까지 존중하고 공감하며 따스하게 배려할 수 있어야 포스트휴먼시대 인간 자격을 갖췄다 할 수 있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