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공유서비스 대명사인 우버는 그동안 확보한 가입자와 데이터 바탕으로 자율주행 경쟁에서도 선두그룹으로 떠올랐지만 구글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가 큰 대가를 치렀다. 2700억원에 이르는 주식을 구글에 넘겨야 했고, 혁신 기업이라는 명성에도 먹칠했다. 큰 타격을 받은 우버는 결국 지난해 말 자율주행 사업부를 매각하며 자율주행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우버로 이직하며 구글의 영업비밀을 유출한 개발자 역시 큰 곤경에 처했다. 200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결정을 받아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1년 6월의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다.
영업비밀 분쟁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인력 영입 과정에서 촉발된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분쟁은 이차전지 업계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까지 요동치게 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금지 결정으로 위기에 처해 있던 SK이노베이션은 분쟁을 끝내는 대가로 2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영업비밀 침해 분쟁은 당사자인 기업과 개인의 운명은 물론 업계 전체의 판도를 뒤흔드는 막대한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중심으로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영업비밀은 개별 기업의 명운을 넘어 국가 경쟁력까지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주요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6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영업비밀보호법과 지침을 제정했고, 일본은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했다. 2019년에는 중국도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제도를 대폭 강화했다. 이렇게 국내법을 정비한 각국의 시선은 국경 밖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겨냥해 첨단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미중 무역협정에는 영업비밀 보호가 핵심 조항으로 포함됐다. 영업비밀 보호 이슈가 국제통상 질서까지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2019년부터 영업비밀 보호 강화를 위한 대대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3배 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영업비밀 보유자의 생산능력을 넘는 침해 수량에 대해서도 배상할 수 있도록 하여 민사 손해배상을 현실화했다. 기술적 판단이 중요한 영업비밀 범죄를 기술 전문가가 직접 수사하는 특허청 기술경찰을 신설하고, 형량을 대폭 상향하는 등 형사 처벌도 강화했다.
특허청은 영업비밀 보호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다양한 지원도 하고 있다. 영업비밀은 특허와 달리 한 번이라도 공개되면 가치를 잃기 때문에 전문가 심화컨설팅 등을 통한 유출 예방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미 유출된 경우 법률 상담과 함께 디지털포렌식을 통한 증거 확보를 지원하고, 분쟁조정 제도를 통해 분쟁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범정부 차원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 기본계획'을 수립, 혁신기업이 무임승차자의 반칙에 넘어지지 않는 공정하고 안전한 경기장을 조성해 나가고자 한다. 이 계획에는 혁신기업을 보호하는 영업비밀 유출 근절 방안, 국제무대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을 보호하는 통상전략 등 기술패권 경쟁 승리를 위한 국가전략이 담길 예정이다.
우리는 신기술 등장과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대변혁 시기를 맞고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혁신기술을 개발하고 지키는 기업과 국가만이 치열한 기술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술 유출 걱정 없는 경기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마음껏 실력을 펼치며 성장한다면 우리나라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김용래 특허청장 yrkim0725@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