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팬데믹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백신 개발에 성공해 세계 각국이 예방접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더나와 화이자는 새로운 플랫폼인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백신 접종율이 높은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치명률이 감소하는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백신 수급이 국가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한 독자 개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는데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을 넘어 독감 같은 엔데믹(주기적으로 유행하는 토착 전염병)으로 변화하면서 계절마다 백신을 맞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안정적 접종을 위한 국산 백신 개발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다. 향후 신종 감염병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위기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국산 백신 플랫폼 개발 성공 경험은 중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으로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한 기업은 총 7곳이다. 상용화를 위한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임상 3상 진입을 앞둔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 상반기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도 기업이 신속하게 임상 3상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기존 허가된 백신과 효과를 비교해 임상시험을 하는 '비교임상'도 허용했다. 시험 대상자가 수만명 필요한 기존 유효성 임상 방식과 비교해 수천명 규모 피시험자를 대상으로 기존 허가 백신 대비 효과를 입증하면 되기 때문에 임상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국내 임상 3상 진입 초읽기
국내 백신 개발사 중 가장 개발 단계가 빠른 곳 중 하나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현재 'GBP510'과 'NBP2001' 두 개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 중 'GBP510'은 임상 3상 진입을 눈앞에 뒀다. 지난 6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 3상 시험계획(IND)을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 3상 계획이 제출된 것은 처음이다.
GBP510은 빌&멜린다게이츠재단,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 등의 지원을 받아 미국 워싱턴대학 항원디자인연구소(IPD)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항원 단백질을 직접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재조합(합성항원 방식) 백신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현재 또 다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인 'NBP2001'도 개발 중이다. 'GBP510'과 'NBP2001'의 임상 결과 등을 고려해 임상 3상에 들어갈 최종 후보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내를 시작으로 국제백신연구소(IVI)와 함께 유럽, 동남아 등에서도 임상 3상을 순차 신청할 계획으로 내년 상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제넥신, 인도네시아 임상 2·3상 승인
제넥신은 DNA 백신 플랫폼을 기반으로 코로나19 백신 'GX-19N'를 개발하고 있다. 제넥신은 국내에서 가장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 임상 2상에 진입했다. 현재 진행 중인 2a상 투약을 마무리했으며 중간 결과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상용화 목표는 내년 상반기다. 7월 초에는 인도네시아 식품의약품감독청(BPOM)으로부터 임상 2·3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지난 6월 공개된 임상 1상 결과에 따르면 19세에서 55세까지 총 21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GX-19N' 3㎎을 4주 간격으로 2번 투여한 결과 총 10명에서 약물 이상반응이 나타났으나 모두 경미한 수준이었다. 심각한 이상 반응을 보였거나 부작용으로 임상을 중단한 참가자는 없었다. 유효성도 확인됐다. 스파이크와 RBD(수용체결합영역) 단백질 결합 항체는 임상 참가자 21명 가운데 81%인 17명에서 4배 이상 증가했다. 중화항체도 투여 전보다 의미 있는 증가세를 보였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또 임상 참가자 20명 중 최소 18명에게서 회복기 환자와 같은 수준 이상의 T세포 면역 반응이 나타났다.
◇진원생명과학, DNA 백신 임상 2a상 진입
진원생명과학은 개발 중인 코로나19 DNA 백신 'GLS-5310' 최근 임상 2a상에 진입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GLS-5310'의 임상 1상 시험 중간분석 결과가 자료모니터링위원회(DSMB)의 심의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진원생명과학은 지난해 12월 식약처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임상 1상과 2a상을 동시에 허가받은 뒤 개발해왔다. 임상 1상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임상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가장 흔한 부작용은 가려움이었다. 접종자 91.1%에서 T세포면역반응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단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중화항체반응은 현재 외부 전문기관에서 분석 중이어서 공개되지 않았다. 결과가 확보되는 대로 회사는 발표할 예정이다.
회사는 2a상 중간결과가 확보 되는대로 연내 3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조건부 허가 등 상업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바이오로직스, 합성항원 백신 임상 2상 돌입
유바이오로직스는 유전자재조합 항원을 이용한 코로나19 백신 '유코백-19'으로 6월 말 임상 2상에 진입했다. 1상을 통해 안전성과 면역원성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은 데 이어 2상에서는 적정한 백신 용량을 탐색한다.
앞서 만 19~50세 건강한 성인 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1상에서는 '유코백-19' 투여 후 발열이나 근육통 등 이상 반응은 없거나 경미한 수준이었고 중대 이상 반응 및 즉각적 이상 반응은 발생하지 않았다. 또 면역원성 평가에서 결합항체, 중화항체, T세포 면역반응을 관찰했으며 용량 증가에 따라 유의미한 반응을 확인했다.
◇셀리드, 바이러스벡터 백신 추가 임상 돌입
국내에서 유일한 바이러스벡터 방식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셀리드는 최근 식약처로부터 임상시험 계획 변경 허가를 받았다. 기존 개발하던 'AdCLD-CoV19'의 2a상에 더해 신규 후보물질인 'AdCLD-CoV19-1'로 1상을 진행하는 내용이다. 기존 'AdCLD-CoV19'는 임상 2a상 투약을 완료하고 데이터를 분석 중이다.
임상 계획을 변경한 이유는 백신 대량생산을 고려해서다. 기존 후보물질의 생산성이 다소 떨어져 생산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약물 전달에 쓰이는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개량했다. 셀리드는 기존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개량 백신 1상을 완료하면 3상을 곧바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큐라티스, mRNA 백신 1상 착수
큐라티스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개발 중인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 'QTP104'의 임상 1상 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1상 임상시험은 국내 건강한 성인 36명을 대상으로 2차 백신 접종 후 백신 안전성, 반응 원성, 면역 원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QTP104'는 자가 증폭 방식의 차세대 mRNA 백신이다. 기존 mRNA 백신과 마찬가지로 항원의 유전 물질을 주입해 인체가 항원 단백질을 생산하고 이에 따른 항체 형성을 유도하지만 자가 증폭에 관여하는 복제 유전자가 삽입돼 항원 단백질을 기존 mRNA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QTP104의 원개발사는 미국 바이오기업 HDT바이오다.
앞서 큐라티스는 쥐, 토끼, 원숭이 등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비임상시험을 마쳤다. 원숭이 모델 시험에서는 높은 용량군에서 안전성을 입증했고 1회 투여 만으로 50%가 넘는 방어 효과를 보여줬다. 또 백신 2회 투여 시 백신 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면역 원성 분석에서 1회 투여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확인했다.
◇HK이노엔, 임상 1상 시험 계획 승인
가장 최근 코로나19 백신 임상 시험 승인을 받은 곳은 HK이노엔이다. HK이노엔은 7월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재조합 백신인 'IN-B009'주에 대한 임상 1상 계획을 승인받았다.
'IN-B009'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항원 단백질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만든 재조합 백신이다. 표면항원 단백질의 N-말단 부위에 세포 투과 펩타이드를 추가로 발현시켜 세포 내로의 전달 효율을 극대화하여 기존 기술과 비교 시 백신의 효과를 대폭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신 플랫폼별 특징은?
현재 국내에서 임상 단계에 진입한 백신 플랫폼은 총 4가지다.
재조합(합성항원) 백신은 이론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검증된 백신이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항원 단백질을 직접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배송과 보관에 어려움이 있는 mRNA 백신과 달리 초저온 보관이 필요 없어 운송이 편리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백신 플랫폼 중 하나로 B형간염 백신이나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등이 재조합 백신에 해당한다. 코로나19 백신으로는 노바백스 백신이 있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 유바이오로직스, HK이노엔이 이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이다.
mRNA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항원 유전자를 RNA 형태로 주입해 체내에서 표면항원 단백질을 생성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백신과 비교할 때 신속하게 개발과 생산이 가능하고 효능과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입증돼 향후 백신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으로 주목받는다. 국내에서는 큐라티스가 mRNA 백신으로 임상 단계에 진입했고 아이진은 IND를 제출한 상태다.
DNA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 항원 유전자(DNA)를 주입해 체내에서 표면항원 단백질을 생성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인체 접종 후 세포내에서 병원체의 단백질이 생산돼 면역반응이 유도된다. 보통 주사기만으로 세포핵 안까지 DNA를 전달하기 어려워 전기천공장치를 함께 써 물리적 자극을 준다. 제넥신과 진원생명과학이 이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다.
바이러스벡터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항원 유전자를 다른 바이러스(아데노바이러스 등) 주형에 넣어 주입해 체내에서 표면 항원 단백질을 생성함으로써 면역반응 유도하는 백신이다. 현재 상용화된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이 바이러스벡터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셀리드가 바이러스벡터 방식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