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셀러레이터, 수탁은행 찾아 삼만리…스타트업 투자 '난항'

옵티머스 사태로 시중은행 수탁 업무 일제히 거부
개인투자조합결성…자금 확보하고도 투자 어려워
'제2 벤처붐' 찬물…"의무조건 기준 강화 등 대책 필요"

펀드의 변칙 운용을 막고 투자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수탁은행제도가 오히려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해 초창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들이 수탁은행을 찾지 못해 투자금이 묶였다. 옵티머스 사태 등으로 펀드 수탁 업무가 고위험·저수익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시중은행들이 수탁을 일제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액셀러레이터, 수탁은행 찾아 삼만리…스타트업 투자 '난항'

3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다수의 액셀러레이터들이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했지만 투자 자금을 확보해 놓고도 수탁 업무를 담당할 은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에 등록된 액셀러레이터는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다만 규정상 자금운용 규모가 10억원이 넘어가면 수탁은행을 반드시 구해야 투자할 수 있다.

A 액셀러레이터는 최근 30억원 규모로 조합 투자자금을 모았지만 은행들이 수탁 업무를 거절하는 바람에 10억원 미만 규모의 3개로 분할하고 있다. 또 다른 B 액셀러레이터도 농협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등 3곳의 은행에 수탁 업무를 요청했지만 일제히 거절당하면서 사실상 투자업무가 멈춘 상태다.

A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10억원 미만으로 여러 개 펀드로 분할하면 그만큼 관리 포인트가 늘어 운영에서 비효율성이 높아진다”면서 “무엇보다 펀드 규모를 낮추면 그만큼 투자 가능한 스타트업도 줄어서 개인투자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의 투자를 더 리스크하게 만드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수탁 업무를 기피하면서 적기에 투자가 필요한 초창기 스타트업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고 있다. 사업 기반이 약한 초창기 스타트업은 적당한 시기에 투자자금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존폐 기로에 서게 된다.

시중은행들이 수탁 업무를 꺼리는 데에는 부담만 크고 이득은 거의 없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옵티머스 사태로 수탁사였던 하나은행에 대한 책임 공방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중 은행들이 펀드 수탁 업무에 발을 빼고 있는 분위기다.

액셀러레이터, 수탁은행 찾아 삼만리…스타트업 투자 '난항'

20년 만에 '제2 벤처 붐'을 맞으며 개인투자조합 결성과 투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투자조합의 전체 운용자금 결성액이 1조원을 처음 돌파했다. 신규 개인투자조합도 전년 상반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2017년 이후 법인의 조합 결성이 허용된 데다 2018년부터 개인투자액 소득공제가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조합 결성 투자 단계에서 수탁은행제도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수탁은행 의무 조건 기준을 투자자금 10억원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거나 은행의 수탁의무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아예 제도 폐지까지 거론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수탁은행제도는 형식적 관리 비용만 더 들고 혁신 벤처·스타트업의 적기 투자가 늦어지는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유한책임투자자(LP)도 몇 안 되는 사모벤처펀드에서도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심도 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이 같은 업계의 요구를 인지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출자자를 보호하면서 스타트업 투자를 활성화할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