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타고 싶은데, 시중에 나온 모델들은 골프 캐디백도 넉넉히 안 들어가는 등 실내 공간이 대부분 작고, 차체 디자인도 젊은 층 위주라 회사 대표가 타기에는 망설여진다.” “국내에서 사업을 하려면 수입차보다는 국산차가 적당하다. 전기차 특유의 급가속이나 급제동 같은 주행감은 다소 거부감이 있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기업대표는 이 같은 생각을 한다.
제네시스 'eG80'은 지금까지 타본 전기차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차다. 전기차 특유의 빠른 반응이나 날렵함은 부족했다. 아마도 기존 내연기관차의 감성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제네시스의 상품전략으로 보인다. 날렵한 전기차 주행 감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층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eG80'은 크고 중후한 고급세단을 원하거나 전기차 특유의 주행 성능에 거부감을 가졌던 소비층에 적합한 차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아닌 G80 내연기관 플랫폼을 사용해 대용량 배터리 장착에 따른 무게 벨런싱이나 공간활용도 등이 우려됐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승하는 시간 내내 차 사진과 주행 경험담을 그동안 전기차를 고심했던 주위의 기업 대표들에게 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경기 스타필드 하남에서 가평의 한 호텔까지 왕복 84㎞ 구간을 시승했다. 차체는 기존의 'G80'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전기차 세단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담았다. 전면 그릴은 공기역학적 효율을 고려한 전기차 전용 'G-Matrix' 패턴으로 제네시스 고유의 이미지를 살렸다. 내연기관차와는 달리 그릴 상단에 충전구가 위치하고 있는데 닫았을 때 충전구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은 그릴은 매끄럽게 뻗어 있었다. 충전구 안쪽에는 '두 줄'의 크롬 장식을 적용해 전체 디자인 통일성을 줬다. 외장 색상은 전동화 모델 전용 '마티라 블루'를 포함해 총 10종으로 다양해졌다. 내장도 '다크 라군 그린/글레이셔 화이트 투톤' 전용 색상 포함 총 4종으로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시승을 위해 시동을 켰다. 역시 조용했다. 내연기관차 특유의 소음과 진동은 거의 없었다. 주행 중에 발생하는 노면마찰음이나 풍절음이 전부였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부드럽고 빠르게 반응했다. 전기모터를 장착한 만큼 초반 가속력이 시원했지만, 전기차 특유의 빠르게 치고 나가는 맛은 다소 약했다.
G80 전기차에는 최고출력 136㎾, 최대 토크 350Nm짜리 전기모터가 전륜과 후륜에 각각 들어간다. 평시에는 하나만 구동되던 모터가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거나 경사로에서 많은 힘이 필요할 때 모두 구동된다. 모터 두 개의 합산 최고출력은 272㎾(약 370마력)로 제로백이 4.9초로 스포츠 세단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는 수준이다.
또 고급차답게 승차감도 좋았다. 일반 도로에서는 물론이고 고속도로 구간에서도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느낌을 줬다. 대형 세단답게 뒷좌석 공간도 넓고 헤드룸 공간도 충분했다.
실내 역시 크게 만족스러웠다. 고급 세단의 안정성과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전방 교통흐름과 운전자의 감속 패턴, 내비게이션 정보를 활용해 회생 제동량을 자동 조절, 전비 향상을 돕는 '스마트 회생 시스템 2.0'으로 보다 효율적 주행이 가능하다.
또 일반적 주행 상황에서 가속 페달만을 사용해 가속·감속·정차할 수 있는 'i-PEDAL 모드' 등 전기차 전용 사양으로 주행 편의성을 높여준다.
편의사양도 갖출 건 다 갖췄다. 14.5인치 화면은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을 통해 직관성이 높아졌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전방 충돌방지보조(FCA), 타깃 차량 하이라이트 표시 등으로 운전 편의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스스로 차로 변경이나 분기로 진입과 합류를 돕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2' 등 첨단 사양도 탑재돼 운전도 편안했다. 차량 탑승 전 차량 내 공기 청정 기능을 원격으로 작동시켜주는 원격 공기 청정 시스템과 스트레칭을 돕는 운전석 에르고 모션 시트가 작동돼 운전 피로도를 낮춰줬다. 그동안 전기차를 사고 싶어도 크기나, 이질적 주행감 때문에 망설였던 기업 대표들에게 이 차를 추천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